고구려 무덤에 들어가면 벽화가 무덤의 천장과 사면을 두르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새로운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 가졌던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소중히 여긴 물건들을 함께 묻어 주었다. 이 풍습이 지나면서 무덤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초기 고구려 벽화 3세기 말~5세기 초는 주로 묻힌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생활 풍속도가 많다. 이승의 삶을 사후에도 이어가려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무덤 주인의 평소 생활 모습을 묘사한 것이 많다.
안악 3호분 행렬도 : 묘주의 행차 모습을 그린 것으로 묘주의 생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생활풍속도에는 묘주의 신분과 권위를 증명하는 풍경이 주로 묘사되어 있다.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에는 생활 풍속과 사신, 넝쿨무늬, 왕자 무늬 등 장식 무늬를 함께 그려넣었다.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에는 후반에는 주로 벽면 전체에 신화적 내용의 벽화가 등장한다 . 고구려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북방 민족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외래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구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오른쪽 고구려 벽화의 내용이 중국 신화의 복희와 여와를 많이 닮았다. 복희와 여와는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태초의 신들로 인류의 시조가 된 오누이이다. 고구려 문화는 중국 문화와 밀접했다.
태양 안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는 해의 상징이자 고구려의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만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으나 외부의 문화를 잘 활용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문화는 국경이 없다. 문화는 물처럼 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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