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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조선시대 5대 궁궐 시간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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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복궁 (1395년)
    •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건립
    • 조선의 첫 번째 궁궐, 조선의 정궁(법궁)
    • 임진왜란 때 소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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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덕궁 (1405년)

  • 태종이 다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며 지은 이궁
  •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지만, 1615년 광해군이 복구
  • 이후 조선의 공식 법궁으로 사용됨
  • 조선 말까지 계속 사용된 유일한 궁궐
  •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창덕궁 이야기

1997년 12월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서울 5대 궁궐 중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고 볼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조선의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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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종 때 왕실 어른(왕의 어머니, 할머니)을 위한 궁궐로 건립
  • 창덕궁 옆에 위치
  • 임진왜란 때 소실, 이후 복구됨

 

창경궁 이야기

 

창경궁 이야기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고 불렀다. 왕이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을 곳이 필요했고 상왕과 왕대비가 머물 궁궐이 필요해서 지은 곳이 창경궁이다. 그래서 아담한 규모와 자연지형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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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덕수궁 (1592년경, 정릉동 행궁)

  • 임진왜란 후 선조가 피난에서 돌아와 머문 임시 궁
  • 이후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
  •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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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덕궁(→ 경희궁, 1617년 착공)

  • 광해군이 건립 지시
  • 인조반정 이후 창덕궁이 다시 중심 궁궐이 되고 경덕궁은 이궁으로 사용
  •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 변경
  • 영조가 19년간 머문 궁궐


1395년, 조선 제1대 왕인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경복궁을 지었습니다.
이게 조선의 첫 번째 궁궐이었죠.

그 뒤를 이은 제2대 정종(재위 1398–1400)은 수도를 잠시 다시 개경으로 옮겼지만, 곧 제3대 왕 태종(재위 1400–1418)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1405년, 바로 이곳 창덕궁을 세웠습니다.
당시 창덕궁은 이궁, 즉 두 번째 궁궐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후 제9대 왕 성종(재위 1469–1494)은 창덕궁 옆에 창경궁을 지었습니다.
이곳은 왕실 어른들 — 특히 왕의 어머니와 할머니 — 를 위한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모두 불타 없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제14대 왕 선조(재위 1567–1608)는 피난에서 돌아와 궁궐이 모두 사라진 상황을 마주하게 되죠.
그는 임시로 월산대군의 집에 머물렀고, 그곳이 훗날 덕수궁이 됩니다.

그 뒤를 이은 제15대 광해군(재위 1608–1623)은 덕수궁에서 즉위식을 치른 후 곧바로 창덕궁 복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년 뒤인 1615년, 왕실은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왔고, 이때부터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 즉 공식 궁궐이 되었습니다.

광해군은 또 다른 궁궐, 인경궁경덕궁도 짓도록 했지만, 곧 인조반정(1623년)으로 폐위되면서 계획은 중단됩니다.
제16대 왕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면서 다시 창덕궁을 중심으로 궁궐 체제가 이어지게 되죠.

그러나 이듬해인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면서 창덕궁은 또 한 번 불타버립니다.
복구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고, 이 과정에서 인경궁의 전각을 해체해 창덕궁에 사용하면서 인경궁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 이후 조선 후기로 갈수록, 창덕궁은 계속해서 법궁으로, 그리고 경덕궁은 이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경덕궁은 나중에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제21대 영조(재위 1724–1776)는 이곳에서 무려 19년이나 머물며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덕궁은 조선의 종말과 함께 조용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27대이자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재위 1907–1910)은 이곳 창덕궁에서 1910년 경술국치, 즉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창덕궁은 다른 궁궐들과 함께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오랜 복원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로 사용된 유일한 궁궐입니다.
조선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궁궐이자, 나라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궁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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