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실에서 왕위 계승은 단순한 혈통 순서로만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적 역학관계, 건강, 신하들의 계산, 외척의 힘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세조의 장손이자 적통 후계자인 월산대군이 아닌, 동생 성종이 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세조의 장손, 월산대군은 누구인가?
- 본명: 이정(李婷)
- 자(字): 자미(子美)
- 호(號): 풍월정(風月亭)
- 시호: 효문(孝文)
- 생몰연도: 1454년 ~ 1489년
월산대군은 조선 제7대 왕 **세조(수양대군)**의 손자이자, 추존왕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로, 왕실에서도 정통성을 가진 **장손(eldest grandson)**이었다.
그의 동생이 바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이혈)**이다.
왕위 계승 원칙상 장손이 우선이었고, 예종이 후사 없이 요절했기 때문에
그 다음 왕으로는 월산대군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왕위는 **월산대군이 아닌, 그의 동생 성종(자산군)**에게 넘어간다.
🔹 건강 문제: 정치적 부담 요소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사료에 따르면,
월산대군은 **어릴 적부터 병약(病弱, weak health)**했다.
몸이 약하면 장기적인 통치가 어렵고,
실제로 조정에서도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 세조의 비이자 섭정 역할을 한 정희왕후는,
“왕이 되기엔 몸이 너무 약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정희왕후는 월산대군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즉위를 반대했고,
실제 왕이 되기엔 정무를 감당할 체력과 의지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 외척과 신하들의 정치적 선택
당시 조선의 조정은 외척 세력과 훈구파가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성종의 외조부인 한명회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 한명회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성종(자산군)**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 성종은 어리고 말 잘 듣는 후보였으며,
이들은 성종이 즉위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월산대군은 장손이자 장성한 성인이었기에
즉위 후 자주적인 왕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외척과 신하들에겐 위협으로 여겨졌다.
🔹 정희왕후의 최종 결정
예종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왕위는 공백 상태가 되었다.
이때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정희왕후는 후계자를 선택해야 했고, 세 가지를 고려했다.
- 월산대군: 장손이지만 병약하고 자주성이 강함
- 제안대군(예종의 아들): 너무 어림 (당시 4세)
- 자산군(성종): 건강하고 순종적이며 외척의 지지를 받음
이 셋 중 정희왕후는 성종을 선택했다.
그는 건강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1469년, 자산군은 13세의 나이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에 즉위하게 된다.
🔹 월산대군은 끝까지 조용히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월산대군이 왕위에서 밀려났음에도
정권에 반기를 들거나 정국을 흔드는 일은 없었다.
- 그는 성종에게 충성을 다했고,
- 왕실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큰 형으로서 왕권 안정을 도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 결론: 명분보다 정치가 앞선 선택
조선은 유교국가였고,
장손 계승이라는 명분이 매우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산대군은 그 원칙을 따라 왕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정치적인 안정과 실리를 고려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 병약한 몸,
- 독립적인 성격,
- 외척과 신하들의 반대
이 모든 요소가 겹쳐 정희왕후는 성종을 선택했다.
🎯 성종의 즉위, 단순한 형제 간 순서 문제가 아니었다
왕위를 누가 잇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순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정치인들의 전략, 외척의 힘, 왕실 내부의 계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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