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는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왕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왕이 되었지만 형제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결국 형제들과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해야만 했다. 당시 홍타이지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고 업적을 쌓은 후 형제들의 힘을 빼앗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숙원인 명나라 정벌을 하고 싶었지만 만리정성의 산해관에 가로막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홍타이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조선이었다.
명나라의 장수 모문룡이 조선 가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수군이 없는 후금에게는 불안한 존재였다. 만약 명과의 전투 상황에 후방에서 공격하면 포위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도에 있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 군대를 토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이 소식을 들은 모문룡이 재빨리 도망쳐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금은 조선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는 명분이 중요했는데 이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조선인이었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즉위한다. 인조반정이 있은 후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난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이 난이 실패하자 남아있는 사람들이 후금에 들어가 광해군의 복수를 위해 조선을 정벌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회를 잡은 후금의 홍타이지는 기회를 잡아 조선을 2달간 침략한 사건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략한 또 다른 이유는 황제가 된후 후금에 심각한 식량난이 일어났고 명나라와의 전쟁으로 교역마저 중단되어 조선을 약탈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후금은 의주를 지나 안주 평양 평산으로 식량을 획득하며 내려오고 있었고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재빨리 강화도로 피난을 간 것이었다.
강화도는 말을 타는 기병 중심의 군대에게는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후금은 여기서 일단 멈추고 조선에 강화 요구를 한다. 조선 입장에서도 후금이 백성을 약탈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화를 받아들인다. 이때 강화 조약을 맺게 된다.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 된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수시로 조선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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