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즉위 70년간 여왕의 자리를 지킨 엘리자베스 2세를 향한 영국인들의 무한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1926년 태생으로 여왕의 나이 96세로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여왕인데 4일간의 플래티넘 주빌리(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주년 기념행사) 마지막 날 행사에 여왕은 참석했다.
여왕의 공식 호칭
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l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의 국가는 God, Save the Queen. 이다.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 이다.
전 세계 현직 국가원수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인물
5달러 지폐와 모든 동전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이 들어간다. 2022년은 엘리자베스 2세 즉위 70년이다. 엘리자베스 즉위때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대한민국 총 13명, 20대 대통령까지 오는 동안 영국의 원수는 한명이었다. 전 세계 현직 국가원수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장수왕은 재위 기간 무려 79년 2개월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는 102세까지 사셨기 때문에 장수왕의 재위기간을 넘길 수도 있다.
여왕의 역할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이자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다. 옛날 영제국의 식민지로 묶여있는 나라를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모임인데 영연방 56개국 중 14개 국가가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왕으로 인정했다. 로열 에어포스, 로열 네이비는 말 그대로 왕의 공군, 왕의 해군이라는 뜻이다. 여왕의 권한으로 전쟁 선포권 성직자 임명권 의회 소집 해산 권한, 법 제정은 최종적으로 여왕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왕의 특권
여왕의 특권은 운전면허증 없이 운전 가능, 여권이 없어도 비행기를 탈수 있다.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발행하는 사람이 여왕이기 때문이다. 여왕은 면책특권이 있어 살인죄를 포함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 여왕 앞에서 누군가를 체포할 수도 없고 여왕이 사는 궁 안에서 체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권한을 남용할 수는 없다. 영국은 글로 된 성문헌법이 없는 나라이다. 예전부터 관습적으로 지켜온 모든 법을 헌법으로 간주하고 헌정질서 안에서 국왕의 권리를 제한 함부로 권력 남용 불가이다.
명예혁명
1688년 전제정치를 꿈꾸던 왕을 몰아낸 영국 의회가 쫓아내는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뤄낸 혁명이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명예혁명의 핵심내용은 국왕의 정치권력을 제한 의회, 국왕의 징세권을 회수하며 국가수반=국왕, 행정수반=총리가 스웨덴, 덴마크, 일본도 의원내각제의 형태로 운영되는 국가이다. 1999년 공화제 도입 관련 호주 국민투표 결과 찬성 45%, 반대 54%로 여왕이 있는 입헌군주제 유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공주 여왕되다
1952년 1월 31일 히드로 공황/영국 런던 당시 공주였던 엘리자베스는 케냐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아버지 조지 6세 국왕 대신 순방길에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급히 돌아오게 되고 그녀는 이제 공주가 아닌 여왕이었다. 이듬해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대관식이 열리고 26세 젊은 여왕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사실 서열상으로는 에드워드 8세가 왕이 되어야 했으나 그는 두 번 이혼한 미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왕관을 버린 것이다. 당시 영국 국교회는 이혼 남녀와 재혼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장녀가 엘리자베스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주로 가정교사를 통해 교육을 받았고 학교에 다닌적도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설한 연설내용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이 있다. 이 약속을 한 후 5년 뒤 대관식이 치러지고 영국 역사상 최초로 생중계가 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왕관의 무게는?
여왕의 효과란?
영어에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s the crown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에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1992년 11월 20일 윈저성에 화재사건이 나서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재건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겠다하고 하자 영국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고민에 빠지 엘리자베스2세는 이제부터 왕실도 세금을 내겠다고 선언했고 버킹검 궁전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버킹엄 궁전 입장료로 수익을 내기 시작해서 버킹엄 궁전 수익은 매년 수천억 원이었다.
군주제 반대파의 가장 큰 불만은 왕실에 들어가는 세금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왕실 유지비용은 매년 8600만 파운드로 약 1400억원이었다. 그러나 사실 왕실이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 왕실 보유 자산에서 파생된 수입 이외에 관광수입, 미디어 산업 수입 로열패밀리 브랜드 수입등 영국 경제에 기여 매년 3조 원정도가 된다. 언론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는 "사실상 비판할 수 없는 존재" 라고 말한다.
자원 입대
엘리자베스의 공주 시절 1939년 제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때 엘리자베스 공주는 19세에 자원 입대하게 되고 현직 국가원수 중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유일한 인물이다. 1940~1941년 독일 공군, 영국 대공습때 엘리자베스2세 아들, 손자들까지 전부 입대했다.
여왕과 총리의 관계
즉위 초에는 여왕이 처음 만난 총리가 윈스턴 처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총리이다. 당시 여왕 26세 처칠 78세로 여왕은 자신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처칠에게 존경심을 표시하며 낮은 자세로 다가갔다. 처칠과의 관계는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문제는 영국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였다. 나이는 비슷햇으나 삶은 정반대였다. 엘리자베스는 로열패밀리였고 마가렛 대처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중산층 가정의 딸이었다.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여왕과 총리들은 철저히 독대를 했기 때문에 총리들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수 있었고 외교 문제나 어려운 문제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 남편, 가족과 거리두기
여왕의 국민적인 인기의 이유는 모범적인 결혼 생활에 있다. 여왕의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 경은 2021년 4월 99세에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13세때 아버지와 함께 영국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한다. 그때 당시 공주를 호위한 이가 18세 필립공이었다. 이때 엘리자베스가 반해 1947년 왕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필립공도 그리스 왕자 출신인데 그는 국적을 버리고 영국인이 되었고 여왕이 된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 남편이다. 그렇게 70년간 여왕의 곁을 묵묵히 지킨 필립 공이었다.
공식석상의 이들을 보면 필립이 항상 앞에 걸어가는데 걸음이 빠른것이 아니라 왕과 신하의 관계이기 때문에 나란히 걸을수 없었다.
여왕은 국가의 기관, 제도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여왕이 자기마음데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남편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절제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여왕이었다. 3남 1녀를 둔 엘리자베스 2세는 자녀와도 거리를 둘수 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의 화려한 의상과 가방
엘리자베스는 화려단 단색 의상을 입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유가 있다. 언제 어디서든 국민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왕의 가방으로 기분을 체크 할수 있었다. 여왕이 가방을 왼손에 들면 편안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런데 오른손으로 가방을 옮기게 되면 이제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뜻이다. 또 손에 든 가방을 탁자위에 올려 놓으면 5분 내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나를 도와달라'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다.
여왕은 영연방의 구심점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연방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런데 2021년 8월 1일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에서 호주 국왕을 겸하는 엘리자베스 2세를 식민지배자라고 부른 호주 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 여왕은 차기 영연방의 수장으로 자신의 아들 찰스를 추천하였으나 여론은 호의적이 않은 상황이다.
영연방 유지의 중요성
1945년 이전 전 세계 영토의 1/4을 지배한 영 제국인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이 이어지면서 탈식민지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영국은 열강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 식민지를 '영연방'으로 묶어두어 영국의 경제력, 외교력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중요한것이다. 호주, 캐나다 등도 영연방에 속한 부강한 나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영국의 되고 있다. 여왕은 70년간 계속된 빡빡했던 영연방 순방일정을 소화하는 이유도 영연방 유지를 위한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영국연방과 군주제를 지켜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었기 때문에 여왕 이후에도 유지가 될지 의문이다. 찰스 왕세자가 후계자가 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상할수 없는 일이다.
엘리자베스 2세 안동 방문
엘리자베스 2세가 순방한 국가만 130여 개국이었고 1999년 4월 21일 73세 생일에 경북 안동 하회 마을 방문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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