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VS 미켈란젤로
1503년 정부는 피렌체에 있는 레오나르도에게 앙기아리 전투 벽화를 의뢰하게 된다. 그런데 다비스상이 이듬해에 완성이 되면서 미켈란젤로에게 레오나르도가 그리는 벽화 그림 맞은편에 벽화그림을 의뢰한 것이다. 이렇게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다.
1504년 당시 52세 레오나르도와 29세 미켈란젤로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은 1364년 7월 28일 카시나 전투였다. 피사를 상대로 피렌체군이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미켈란젤로가 임금 차이로 분노했다는 설이 있다. 레오나르도가 벽화를 그리는 대가로 받은 금액은 10,000 플로린이였는데 피렌체 공무원의 100년 치 임금이었다. 반면에 다비드상을 제작했을 당시 미켈란젤로의 임금은 400 플로린이었다. 그래서 벽화 임금이 더 높으니 미켈란젤로도 벽화 작업을 요청했다는 설이 있다.
앙기아리 전투의 치열한 전투의 한 장면을 그린 레오나르도는 사람과 말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통해 전투의 잔인함을 보여주려 했던 그림이다.
행군 중에 목욕을 하고 있다가 기습을 받아 전투를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고 급하게 옷을 입고 급하게 바지를 입는 모습등 전쟁 직전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자신들 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레오나르도가 등 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나체 남성 그림을 보고 "우아함이 결여된 나무토막 같다. 마치 호두 자루처럼 말이야" 비판했고 레오나르도는 회화가 조각보다 수준 높은 예술이라고 말을 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두 거장은 서로 디스만 하다가 레오나르도는 채색 중 피렌체를 떠나버리고 미켈란젤로 역시 교황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떠나게 된다.
그 이후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세기의 거장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림을 남기게 된다. 51살의 레오나르도가 남긴 것이 모나리자이고 현재 가장 가치있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유명한 이유 (스푸마토 기법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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