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통합 과정: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탄생 175-3
1707년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을 탄생시켰다. 세나라의 연합왕국이 된 영국은 약 100년 후 1801년 아일랜드까지 통합을 한다. 아일랜드의 통합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171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 시절 아일랜드는 여러 소왕국들이 있었다. 아일랜드의 소왕국들이 서로 싸우다가 잉글랜드 영주들에게 지원병을 요청했다. 이때 여러 신하들이 진출했는데 헨리 2세는 아일랜드에 진출한 신하들이 힘을 갖게 되는 것을 원치않았기 때문에 직접 아일랜드를 점령하게 된다. 이때부터 잉글랜드 국왕이 아일랜드 영지를 다스리는 '종주왕'을 겸하게 된다.
잉글랜드 종교 개혁
이후 약 360년간 잉글랜드인과 아일랜드인이 융화되어 살아가다가 1534년 잉글랜드의 간섭이 심해지는 시기를 맞게 된다. 당시 헨리 8세가 가톨릭에 등을 돌리며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종교 개혁 단행으로 가톨릭에서 분리된 잉글래드는 개신교 국가가 되었고 국교가 달라지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에 자신들의 새종교를 믿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아일랜드 북쪽 지역 얼스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곳에 살았던 가톨릭 아일랜드인은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게 된다.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아일랜드 정벌
이에 토착민들은 경착이 힘든 아일랜드 외각지역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이런 종교 탄압과 토지 강탈에 분노한 아일랜드인들은 강한 분노를 느꼈고 잉글랜드가 내전인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진압한 사람이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전에 승리한 후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일랜드를 침공한다. 이때 많은 전투를 벌이며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당시 아일랜드 북쪽 드로이다 성의 수비대 전원을 몰살시켰고 성 안의 주민들을 처절하게 학살했다. 이때 아일랜드인 학살로 인해 인구구 15~20%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때 자신을 따라왔던 개신교도 들에게 아일랜드인의 땅을 나눠줬고 많은 아일랜드인이 소작농으로 전락해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일랜드 강제병합
1798년 그 당시 옆나라 프랑스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영향을 받아 아일랜드 사람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독립해 국민이 주권을 갖는 공화국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 의견이 나오자 1801년에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강제 병합하면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잉글랜드의 네 나라의 연합 왕국이 출범하게 된다. 그래서 국기도 다시한번 바뀌게 된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끊임없이 핍박했는데 당시 가장 심각했던 건 식량 문제였다. 곡물, 채소, 가축등은 반강제적으로 영국에 수출했던 상황으로 인구에 비해 부족한 땅에서 대량 재배가 가능했던 감자가 당시 유일한 식량이었다. 그러나 1840년대 들어서자 주식인 감자에 역병이 들어 감자 대기근이 발생한 것이다. 1845~1852년까지 7년간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100만 명 이상이 굵어 죽게 된다.
이 역병은 세균 번식이 매우 빨라 금세 밭 전체에 퍼졌던 감자역병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면 starving 이라는 동상이 있는데 당시 대기근을 추모하는 곳이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 아일랜드 기근에 무관심했고 이후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아일랜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은 이민이었다. 이때 아이랜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민을 갔던 곳이 미국이었고 1800년대~1900년까지만해도 1/3 상당의 미국 이민자는 아일랜드인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고 훗날 미국 역사에 큰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이다. 현재도 미국에는 많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타이타닉 침몰 사건
아일랜드인의 미국 이민 행렬이 벌어지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1912년에 일어난 사건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다. 대기근 여파로 꾸준히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상황에서 아일랜드인을 싣고 떠난 배 중 하나가 타이타닉호였다.
당시 타이타닉 호는 유명한 배였다. 산업혁명 이후 나온 당시 세계 최고 증기선이였고 당시에는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선전을 하기도 했다. 영국을 출발해 아일랜드 퀸즈타운 항구에 들러 많은 이민자를 싣고 미국으로 향했던 배이다. 좌석의 등급별로 다양한 사람들이 탔다. 항해 중 빙산과 출동하게 되어 사상 최악의 침몰 사고가 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영국과의 연합은 아일랜드를 국가적 위기에서 도와주지 못했다. 식민지 시절보다 아일랜드를 비참하게 만든 이름뿐인 연합이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전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의 모든 역량이 전쟁에 쏠리게 되자 아일랜드는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이라 불리던 세력이 독립운동을 위해 독일과 손을 잡게 되고 독일 해군으로부터 2만점의 소총과 실탄을 지원받아 싣고 오던 중 영국에 발각되면서 모든 무기가 압수를 당하게 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16년 아일랜드인은 계획을 바꿔 영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더블린의 중앙우체국을 장악한 후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그래서 한국과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어 유럽에서 가장 한국인과 통하는 나라를 아일랜드로 뽑기도 한다. 영국군은 급하게 병력을 아일랜드로 보냈고 이 봉기를 진압이 되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부활절 봉기 아일랜드인을 잔혹하게 처형을 했다. 독립운동 여파로 80여 명의 아일랜드 독립군이 처형을 당했고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6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봉기에 가담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희생을 당했다. 1차 세계대전에 영국이 승리를 했으나 아일랜드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더 불타올랐다.
아일랜드 IRA 조직
아일랜드 독립세력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아일랜드 공화 국군이라 불리는 IRA 군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1922년까지 영국에 맞서 싸웠고 주요 인물 암살, 매복 공격, 주요 건물 습격 등 치열하게 항쟁했다. 2년 6개월간의 소모전 끝에 영국은 지쳐갔고 영국군은 아일랜드와 협상하기로 한다.
아일랜드 독립
양국은 과거 많은 영국인들이 터를 잡고 있던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을 독립시키는데 합의했다. 그렇게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1922년 4개의 나라가 합쳐저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 지금의 UK가 완성이 된다. 영국은 이렇게 다양한 민족의 경쟁으로 탄생하게 된 국가이다. 서로 적대적인 역사를 갖고 있던 네 나라는 18, 19세기의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인이라는 단일의식 형성에 기여했다. 또한 철도 개통과 도로 교통의 발달로 늘어난 지역간의 문화교류도 활발해졌고 1차 , 2차의 세계대전을 함께 겪으면서 애국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분열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 영국이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2014년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 투표를 진행했으나 부결되었고 코로나 19, 브렉시트에서 보여준 무능한 영국정부를 보면서 다시 독립을 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도 통합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는 영국이다.
** 영국 속 4개의 나라 탄생 과정 : 영국의 뿌리 켈트족 /할로윈 기원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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