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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만의 침공
브리튼섬을 점령한 앵글로색슨의 시대는 약 600년간 이어졌다. 그러다가 이 평화를 깨트린 또 다른 침략자가 등장한다. 프랑스 북부에 세워진 노르망디 공국의 기욤이다. 기욤은 스칸디나비아에 살다가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간 바이킹 민족의 후예였다.
기욤이 북쪽에서 왔기 때문에 North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의 노르만 (Norman)이라 부르게 되었다.
웨일즈 정복
1066년 브리튼섬을 침공한 기욤 2세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색슨의 왕을 죽이고 자신이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한다. 그렇게 노르만 왕조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윌리엄 1세의 귀족은 지금의 영국 왕족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윌리엄 1세는 여러지역에 군사 요새를 짓고 전국의 토지를 조사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국가 체제를 견고히 했다. 노르만 왕조는 이전의 앵글로색슨족과 또 다른 행보를 보인다.
주변국을 정복해 세력을 더 확장했던 것이다. 그 첫번째가 웨일스였다. 웨일스는 당시 여러 왕국이 갈라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통일된 잉글랜드에 비해 소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어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 1283년 이런 웨일즈를 침공해 정복한 후 신하들에게 웨일즈 땅을 나눠준 잉글랜드 왕은 에드워드 1세였다. 그리고 임신 중이던 자신의 왕비를 웨일즈로 데려와 출산을 한 후 자신의 아들을 웨일즈의 지배자 왕세자로 임명했다. 그렇게 1301년 웨일즈는 잉글랜드에 완전히 종속된다.
스코틀랜드 침공
웨일즈를 통합한 에드워드 1세는 다음 정보지로 향한다. 바로 브리튼섬 북부에 위치한 스코틀랜드였다. 스코틀랜드는 10세기경부터 통일된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로마의 침공에 맞서 싸운 전적이 있었던 전사들의 후손이었다. 잉글랜드를 견제하고 싶었던 스코틀랜드 왕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고 이 사실을 안 잉글랜드 에드워드 왕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베릭 학살사건
1296년 3월 스코틀랜드로 향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베릭을 포위하고 이곳 주민에게 항복할 시간 3일을 줬다. 그러나 이들은 항복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는 이들을 전투와 상관없이 민간인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약 4000~17,000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너무 잔인하게 죽여서 Hammer of the Scots라는 스코틀랜드인 잡는 망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전리품 스콘의 돌
스코틀랜드 중심부까지 진군하며 도시를 점령해 나간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상징인 스콘의 돌=운명의 돌을 약탈해가면서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형을 배신하고 도망치다가 돌덩이를 배게처럼 비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래서 이 돌을 성물로 여겨 스코틀랜드 왕들은 운명의 돌 위에서 왕관을 받고 이름을 새기는 전통이 있었다. 이를 알았던 에드워드 1세는 일부러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을 전리품으로 선택한 것이다. 가져온 돌을 깔고 앉아 더욱 모욕감을 주었다.
이 의자는 잉글랜드에서 각종 왕실의 행사가 열리는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보관을 하고 있고 1399년부터 헨리 4세의 대관식때 새로운 왕의 의자로 사용했다. 이 의자에 앉아서 대관식을 한다는 것은 스코틀랜드를 함께 지배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최근 2023년 찰스 3세의 대관식까지도 이 의자를 사용했다.
1996년 스코틀랜드로 다시 운명의 돌을 돌려줬고 현재는 대관식때만 잠시 빌리는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영웅 윌리엄 월리스
운명의 돌을 가져간 것은 스코틀랜드인을 분노캐했고 결국 반란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독립군의 선봉장에 나섰던 사람이 윌리엄 월리스이다.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윌리엄 월리스는 다리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잉글랜드군 절반이 다리를 건너자 급습했고 잉글랜드군은 다리를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다리는 병사와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고 많은 잉글랜드 군사는 익사하며 승리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그러나 윌리엄 월리스는 결국 다시 잉글랜드 군에 붙잡히게 되고 목을 매달고 끌고 가서 사지를 잘라 잔혹하게 처형했다. 잉글랜드는 반항의 싹을 자르려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를 싫어하게 되었고 지금도 축구팀 응원할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두 팀을 응원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상태 팀 그가 누구든..!!
윌리엄 월리스의 처참한 죽음은 스코틀랜드인을 더욱 저항하도록 했고 1314년 베넉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30년간 이어진 전쟁에 지친 잉글랜드는 결국 1328년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하며 에든버러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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