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15세기 초까지 여러 개로 분열된 동아시아의 작은 변방의 나라였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아래 해상무역 강국으로 성장하지만 이후 일본에게 멸망하며 일본에 편입된다. 이후 일본을 지키는 방패로 최전선에 내던져졌고 현대에도 영토의 20%가 군사기지로 사용되며 끝나지 않는 차별과 불평을 겪고 있다.
오키나와 방언은 일본어와 완전히 다르고 외모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차별이 있다. 음식도 일본은 메밀 면을 사용하는데 오키나와는 밀가루 면을 사용한다.
일본의 지배를 받은 오키나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일본이 되기전 오키나와는 독자적 문화를 가지며 400년 이상 독립왕국으로 번성했었다.
류큐 왕국 탄생
오키나와가 완전한 일본 땅이 된것은 불과 52년 밖에 되지 않는다. 오키나와는 본섬에서 떨어진 2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였고 오랬동안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고 여러 호족들이 독립적으로 지배했었다. 그러던 1429년 첫 통일 왕조는 명과 책봉. 조공관계를 맺었고 명 황제 선덕제로부터 왕조의 성씨 '쇼' 와 국호 아름다운 옥구슬이라는 뜻의 '류큐'라는 국호를 하사받게 된다. 쇼씨 왕이 다스리는 류큐라는 나라다.
류큐 왕국 침략한 일본
류큐국은 명으로부터 해상무역을 독점하는 특전을 받았고 이 중계무역을 통해 류큐국의 경제는 번성하며 15~16세기 전성기를 지냈다. 그러던 16세기 후반 1600년간 이어진 류큐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이때 전쟁 사용할 군역 부담을 강요했다. 이에 황금 8000천냥을 상납 및 식량원조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전쟁을 명에 알린다. 이후 일본은 도쿠카와 이에야스 시대가 열린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교역을 끊은 명나라였다. 이에 일본은 류큐국에 명나라와의 교역에 중계를 요청했으나 이를 다시한번 거절하면서 1609년 류큐국의 무례를 명분삼아 류큐국을 침공한다. 이에 명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명나라 또한 후금에게무너질 위기였기 때문에 군사를 보낼 여유가 없었고 전쟁 경험이 없던 류큐국은 두 달뒤 일본 사츠마번에 점령한후 국왕과 신하를 인질로 잡아갔다. 이를 비난한 류큐국의 신하를 가마솥에 넣어 끓여 죽였다. 이를 본 국왕은 바로 항복을 선언하고 일본에 조공을 받치는 나라가 되었다. 이로써 류큐국은 명과 일본 두나라에 조공을 받치게 된다. 그 뒤로 류큐국은 약 200년간 일본에 수탈당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하게 되고 이 시기 일본은 영토 확장을 시작하며 류큐국을 완전한 일본땅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오키나와 탄생
때마침 류큐국을 편입할 사건이 발생한다. 1871년 태풍으로 류큐국 사람들이 타이완이 표류하게 되고 타이완의 원주민에게 66명 중 54명 살해된다. 이에 일본은 청나라에 이를 해결할 것을 종용하니 청나라는 소극적은 태도를 보이게 되고 이에 일본은 류큐국을 류큐번으로 류큐 국왕을 번왕으로 낮춰서 규정한다. 류큐국을 일본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청의 반발을 예상했으나 태평천국의 봉기로 힘이 빠진 상태였고 봉기 진압 후 러시아, 프랑스와 영토분쟁 중이던 시기라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일본은 타이완 원주민 지역이 청의 관활이 아니라고 했다는 핑계로 1874년 5월 타이완을 침공해 일본이 승리한다. 이때 일본의 타이완 침공을 자국민 보호 조치라고 인정을 청으로 부터 받게 되고 이는 곧 류큐가 일본 영토라는 것을 청이 공인하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에게 류큐번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류큐를 완전히 병합하면서 류큐의 마지막 국왕을 폐위시키고 1879년 4월 4일 일본은 450년간 사용했던 류큐라는 국호를 없애고 새 이름 오키나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이로써 일본에 오키나와가 탄생한다.
오키나와 뜻
오키나와는 바다의 먼곳에 새끼줄 같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류큐국이 일본의 한 지방으로 편입되자 류큐인은 하루아침에 일본인이 되었다. 강제로 하루아침에 일본인이 된것에 반발할 우려가 있어 동화정책을 펼치게 된다.
류큐왕국 말살 정책
오키나와에서 오랫동안 사용했던 류큐어는 일본 본토어와 완전히 달라서 오키나와에는 일본 본토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키나와를 원활하게 지배하기 위해 류큐섬에 교습소를 차리고 일본어 교육 정책을 실시한다. 일본은 이를 통해 류큐국의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했다.
교실에서 류큐어를 사용한 학생에게는 명찰을 걸돌록 해 품행점수에서 감점이 되어서 취업과 진학에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언을 쓴 다른 학생을 찾아내 명찰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로써 명찰을 건 학생은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또한 류큐인을 일본을 위해 희생을 할 일본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류큐인들에게 군사훈련을 지켰고 학교에서의 운동회 또한 군사적 색채가 강했던 종목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당시 운동회에서 했던 운동 가라테가 있다.
원래 가라테는 류큐국의 호신 무술이었는데 체육 수업에 도입되면서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인류관 사건
1903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오사카 내국박람회 사설 전시 기념 사진이다. 이는 일본인과 가까운 다른 인종을 모아서 그 풍속, 도구, 생활모습등을 보여주려는 취지로 (1868년 일본에 병홥된) 홋가이도 아이누족, 타이완 원주민, 류큐인, 조선인, 중국인, 인도인, 인도네시아인,뱅골인 총 21명의 남녀가 각국이표시된 일정한 구역 안에서 단란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류큐인들은 일본인과 같은 교육을 받았으나 출신지로 인해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 전시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류큐인들은 일본의 2등 신민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다음글] 오키나와 전투 : 중국, 일본, 미국에 배신당하다 .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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