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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부산 영도 다리 = 영도대교 : 흰여울 마을

부산 영도

영도는 부산의 남쪽에 자리잡은 섬으로 현재 부산항, 영도, 남항대교 등 4개의 다리가 부산내륙과 연결되어 있다.

 

영도

 

영도는 16세기 동아시아 최대 전쟁 임진왜란의 첫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1592년 4.13일 부산에 상륙한 700여척의 왜선에  만 팔천 여명의 왜군을 싣고 가장 먼저 침략한 곳이 부산 영도였고 한반도,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그때 부산의 무사 정발 장군이 영도에서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사냥 중이였는데 이를 보고 부산 진성으로 들어가 대비를 했다. 임진왜란 첫 전투 부산진 전투에서 600여 명의 병사와 정발 장군은 장렬히 전사하고 부산 진성을 지켰다.

 

남항대교

 

부산 영도다리=영도대교

영도다리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부산 중구와 영도)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 다리이자 한국 최초의 유일한 일엽식 도개교이다. 

 

 

영도 다리를 왜 도개교로 만들었나? 

영도 다리는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다리로 당시 군수 물자 수송에 수월하게 하기 위해 상판을 들어올린 도개교를 만들었다. 군수물자는 영도대교를 지나 부산역, 용산역, 신의주까지 이동하여 당시 일본과 중국이 전쟁할때 군수물자로 사용되었다.  

 

영도다리

1934년에 만들어진 영도다리는 건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여 명 정도였으나 당시 다리가 들린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를 구경하기 위해 6만여명의 사람들이 운집했었다고 한다. 

 

국내 유일의 도개교(열리는 다리)/매일 낮2시에 들림 1934년 

 

6.25 전쟁 당시 대통령이 내려와 있고, 임시수도에 미군이 지원해주고 안전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몰려든 480만 피란민들은 부산과 영도를 잇는 다리 영도다리에 모여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가 영도다리였기에 난리통에 헤어진 가족들은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다급한 약속을 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영도다리는 많은 피란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영도 다리밑에 점집이 많이 있었는데 헤어진 가족의 생사를 알고 싶어 점집을 많이 찾게 되어 점집들이 영도다리 밑으로 몰렸다고 한다.

 

영도 다리가 나오는 노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는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는 노래였다.   1966년 32년뒤 다리를 고정시킨다. 

 

 

영도 흰여울 마을 

부산의 영도는 아이돌 스타 강다니엘의 고향으로 그의 팬들은 그가 졸업한 신선중학교에서 옆 흰여울 마을에서 생일파티를 했다고 한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피난민들의 마을이였다가 리모델링을 통해 관광지로 재탠생한 곳이다. 

 

흰여울마을 위치
흰여울해안터널은 유명한 포토존
천만 관객의 신화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 흰여울 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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