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 데 메디치 등장
로렌초 데 메디치 (1449-1492) 는 코시모의 손자로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이끈 인물이다. 가문의 위세가 최정점에 올라온 시기 로렌초 데 메디치의 등장으로 현재까지 기억하는 가문으로 성장한다. 할아버지 코시모가 사망하고 병악했던 아버지 피에로마져 사망한후 1469년 겨울, 20살의 나이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된 로렌초이다. 사실 로렌초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다.
로렌초는 학문 노래 무술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었고 그 중에 가장 뛰어났던 것은 언변이었다. 또한 메디치가 지금껏 명성을 이어올수 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돈을 문화 예술에 투자해서 르네상스 발전에 크게 일조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투자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은 메디치 가문에서 미술가에게 의뢰하거나 수집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금융과 무역업으로 번돈의 상당 부분을 예술에 후원했다. 그 이유는 메디치 가문이 활동했던 때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시기로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르네상스가 꽃피던 15세기 할아버지 코시모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러받은 로렌초는 예술가들에게 마음껏 투자를 했다.
* 우피치는 사무실이란 뜻으로 사무실 건물 미술관으로 변경 유명한 작품 약 2500점이 전시된 곳이다.
당시에 재료비까지 포함해 예술가들에게 큰돈을 주며 그림을 의뢰했고 때로는 매달 일정비용을 주며 예술 활동을 후원했다. 그래서 르네상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로렌초를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렌초는 예술가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후원을 한 걸까? 그것은 메디치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소문을 듣고 로렌초에게 예술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로렌초가 후원했던 예술가
많은 예술가들이 로렌초를 찾아왔고 대표적인 예술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등 그 시대의 위대한 거장들은 거의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미켈란젤로
그 중에 한명이 미켈란젤로로 그에 대한 로렌초의 애정은 각별했다. 어릴때 부터 재능을 알아보고 고급 인문학 강의는 물론 매달 5백만원정도를 후원하면서 마음껏 공부하도록 했고 인체에 대해 공부할수 있도록 시체를 제공한 것도 메디치 가문이었다.
보티첼리
메디치 가문에서 특히 많은 작품을 의뢰했던 예술가는 바로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보티첼리였다. 비너스는 당시 피렌체 최고의 미녀 시모네타 베스푸치였다. 보티첼리는 미녀 시모네타를 짝사랑 중이었고 시모네타는 유부녀로 로렌초의 남동생 줄리아노와 불륜관계였다. 이 때문에 보티첼리는 그녀를 보기만하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비너스의 탄생>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번영으로 피렌체도 꽃 피운다는 뜻을 담은 그림이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해 여러 개의 전시실에 걸쳐 보티첼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와 작품을 계약한 후에 그림의 주제와 등장인물은 물론 크기와 배치도 합의하였다. 그래서 보티첼리의 그림들은 메디치가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그림들이 많이 있다.
<프리마베라> 그림은 꽃과 봄의 여신은 피렌체 꽃이 도시를 상징하고 있고 전령의 신이자 상업과 무역의 신 헤르메스이 가장 왼쪽에 있다. 이것은 피렌체 상업하면 메디치 가문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피렌체에 어두운 시대가 가고 메디치 가문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위 그림의 이름은 <동방박사의 경배> 라는 그림이나 메디치 가문의 가족사진이나 마찬가지인 그림이다. 아기의 수의 발을 닦는 동방 박사 코시모대 메디치 있고 붉은 망토의 동방 박사는 로렌초 아버지 피에로 대 메디치이다. 오른쪽의 세번째 동방박사는 암살 사건 때 죽은 로렌초의 남동생 줄리아노이고 로렌초는 왼쪽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이다.
음악에 투자
오페라 탄생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1600년대 앙리 4세와 마리아 데 메디치의 결혼식이 있던 해 축하연이 피렌체에서 열렸는데 이때 메디치가 후원했던 음악가들이 연주를 했다. 이때 만들어진 음악이 프랑스와 유럽에 전파되어 지금의 현대 오페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발레, 피아노 발명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지금과 같은 현대식 피아노를 만들어냈다. 발레도 역시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가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아들 앙리 3세에게 지시해 1581년 최초의 발레공연을 만들게 했던 것이다.
피아노는 이탈리아어 'pianoforte' 에서 나온 말이다. piano 는 작은 소리 forte 는 큰소리라는 의미이다.
학문에 투자
공공도서관 설립
그러나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분야는 예술뿐만 아니라 학문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로 이를 위해 플라톤 아카데미 클럽을 후원했다. 책 사냥꾼을 통해 유럽과 비잔틴 지역의 고전을 사들였고 많은 책을 수집한 후 도서관을 지어 소장했다. 공공도서관을 설립해 누구나 이용할수 있게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내부와 특히 입구의 계단이 유명했는데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어두운 계단과 밝은 도서관 내부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라는 콘셉트로 설계한 것이다.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는 1만권 이상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과학자 후원 (갈릴레오 갈릴레이)
또한 과학자 후원을 위한 아카데미도 설립했고 가장 유명한 인물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이때 발명한 것이 오일과 에탄올의 밀도 차를 이용한 최초의 온도계가 탄생했다.
미술가 육성 (아카네디마 미술관)
그 외에 미술 아카데미를 운영해 미술가를 육성했고 그것이 지금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이다. 이곳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볼수 있다. 이렇게 학문, 예술을 후원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적 소양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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