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내용) 로렌초 데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예술가 과학자 누구? 70-3
메디치 가문이 있던 시기에 교회의 가장 큰 죄목은 탐욕이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으는 일, 요구하는 일은 죄악으로 치부했었다. 이에 은행업자, 이자 대부업자들에게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교회에 기부하라고 했고 메디치 가문도 자신이 지은 죄를 씻고 구원을 얻기 위해 큰 결정을 한다.
두오모 성당 돔 후원
바로 피렌체의 상징이자 랜드마크가 된 두오모 성당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당시 지붕이 없었던 두오모 성당의 지붕을 만드는데 엄청난 후원을 했다.
돔의 지름은 약 45m로 무게 약 2.5 톤을 견뎌내야하는 기술의 부재로 미완으로 남아있던 성당이었다. 그러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고 돔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수직과 수평을 교차해 벽돌을 쌓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16년간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 상인의 후원으로 두오모 성당의 돔이 완성된다.
산 마르코 수도원 기부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 전역에 걸쳐 성당과 수도원에 엄청난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중에 산 마르코 수도원이 있다. 이전까지 후원자가 없어 방치되던 수도원을 메디치 가문이 현재 가치 약 400억, 4만 플로린을 후원해서 15세기 가장 부유한 수도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게다가 아름다운 건물들에 가문의 문장도 곳곳에 기록해두었다.
메디치 가문 몰락
중세시대 유럽에서 돈 권력 문화 종교 모든 것을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은 사치와 자만에 빠져 결국 막대했는 부는 바닥이 드러나며 한 시대를 장악했던 권력은 18세기 무렵 끊어지고 만다. 300여년간의 부흥 후 17세기 말부터 주변국가의 힘이 막강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마지막 상속자 안나 마리아 루이자는 메디치의 예술품을 모두 국가에 기증한다.
조건은 단 한점도 피렌체 밖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것과 모든 예술품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조건으로 했다. 그 덕분에 메디치의 미술품은 피렌체에 온전히 보관될수 있었다.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메디치가 마지막을 남김 것이 바로 우피치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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