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은 누구?
당 제국의 몰락을 이끈 양귀비와 그의 일가 사치뿐 아니라 양귀비와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안록산이 있었다. 안록산은 체격과 덩치가 매우 크고 이란과 돌궐계 이민족 출신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붉은 머리와 파란 눈의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당시 당 제국은 외국과의 교역도 활발하고 개방적인 제국이라 외국인도 출세가 가능했던 시기였다.
이민족 출신 안록산도 출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방의 군사를 통솔하는 절도사 직책을 맡게 된다. 당시 현종 때 당 제국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절도사의 권한이 매우 높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의 군사권 뿐만아니라 행정, 재정권까지 장악하며 점점 황실에서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권력자가 되었다. 742년 경에는 안록산은 평로 절도사, 범양 절도사, 하동 절도사까지 겸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점점 키워가면서 당제국 동북 변경의 군사력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안록산이 총애받은 이유
안록산이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던 이유는 아첨뿐만 아니라 언변까지 뛰어났고 심지어 그의 특이한 외모가 즐거움을 주는데 큰 몫을 했다. 200KG에 육박하는 거구였고 안록산의 늘어진 배는 무릎을 덮을 정도였다. 안록산이 말을 타면 들어진 배를 받아주는 배 전용 안장이 필수였다. 또한 안록산의 특별한 재주는 호선무를 아주 멋있게 췄다고 한다. 춤과 노래를 사랑한 현종과 양귀비가 좋아할수 밖에 없었다. 당시 안록산은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6살이나 어린 양귀비 앞에서 온갖 재주를 부렸다.
양귀비 양아들 되다.
현종과 양귀비의 신임을 받으며 권세는 점점 높아졌고 746년 북쪽 거란을 격파하는 공을 세우고 장안에 입성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16살 차이 안록산을 양귀비는 양아들로 삼았다. 그리고 양아들이 된 기념으로 안록산에게 첫 목욕을 시켜준다. 당시 중국 풍습에는 아기가 태어난 삼 일째 약재를 넣고 끓인 물에 몸을 씻겨주고 포대기에 싸서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렇게 양귀비의 양아들이 된 안록산은 황궁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양귀와 식사를 하거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현종은 둘 사이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안록산 VS 양국충
이렇게 안록산은 양귀비의 총애를 받고 빠르게 세력을 확보했다. 이 당시 양귀비의 6촌 동생 양국충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상황이었고 안록산의 등장으로 서로는 위기를 느끼고 이는 충성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당 제국은 돌궐, 거란, 토번, 남조 세력이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돌궐 세력과는 당 초기에 화친을 맺어 전쟁이 없었으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ㅅㅔ지역은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고 이때 745년 안록산이 거란을 토벌하고 오자 양국충은 무리하게 남조와의 전쟁을 나서게 되고 결과는 대패를 하고 남조가 토번과 손을 잡고 당 제국에 대항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무리한 전쟁이 계속 될수록 백성들의 생활은 비참해졌다. 당시 두보의 시에서 보면 알수 있다.
안록산의 난
현종은 양귀비의 외척들과 간신들에게 조정을 맡긴 채 양귀비와 향락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이때 안록산이 현종과 양귀비를 배반하고 반락을 주도하게 된다. 반란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양귀비의 6촌 오빠 양국충이었다. 안록산을 재상으로 올리려 하자 양국충은 현종에게 안록산이 반역을 저지르려한다고 모함을 했고 심지어 태자도 안록산에게 적대감을 표시했었다.
이에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을 눈치챈 안록산은 나라를 망치는 양국충을 없애려 병력을 가진 절도사로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것이 755년 당 제국 몰락의 서막을 연 안록산의 난이다. 당 제국 1/3 병력을 장악한 안록산 군대는 빠르게 당 제국을 무력화시켰고 유주에서 시작해 한달 여만에 낙양까지 진군했고 수도 장안까지 장악할 기세였다.
안록산의 군대가 가까워지자 피난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는 수도를 버리고 도망간 셈이었다. 이 반란으로 현종과 양귀비는 피난 두 째날 장안에서 떨어진 마외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고 이때 군사들이 당 제국을 혼란에 빠트린 양귀비 일가의 처단을 요구하게 된다. 이에 양국충과 세 자매는 병사들에게 쫓기게 되고 그 결과 양국충과 양귀비 언니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양귀비의 죽음
양귀비를 죽이라는 병사들의 아우성에 현종은 대답 대신 눈물을 보이며 양귀비를 돌아보지 못했고 현종의 환관 고력사가 현종을 대신해 양귀비를 근처의 불당으로 ㄷㅔ려가 비단으로 양귀비의 목을 메게 하고 죽게 했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는 37세였다.
홀로 남은 현종은 일찍 황제 자리를 아들 숙종에게 물려주고 반란을 진압하게 하고 그는 양귀비를 떠올리며 쓸쓸히 여생을 보냈다. 구당서에 의하면 장안으로 돌아온 현종은 양귀비의 묘를 파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종은 양귀비가 없이 6년을 더 살다가 762년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에 당 제국은 점점 쇠퇴하게 된다. 결국 90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거대한 당 제국 몰락에 양귀비가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나라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한 여자의 탓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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