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105인 사건 : 신민회 해산을 위해 일제가 날조한 것은? 지속적인 구국활동에도 자주독립국가의 길은 멀기만 했다. 1905년 일제에 의한 강제 외교권 박탈과 통관부 설치로 내정을 장악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제 2차 평화 박람회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사건이 들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위당한다. 1910년 경술국치의 한일 합병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국권 상실에 이르게 된다. 105인 사건 1911년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을 사전에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빌미로 독립운동가 600여 명을 검거한다. 아래 사진은 1911년 9월 공판정으로 끌려가는 신민회 인사들이다. 이 당시 죄수가 밖으로 나갈때 반드시 용수를 썻던 것이다.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되고 그로부터 약 3개월 후.. 더보기 서희의 외교 담판: 거란의 1차 침입 [이전글]천추태후 이야기 거란과 고려는 태조 왕건때부터 악연이 시작된다. 당시 조선은 거란을 야만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부교 사건으로 거란과 고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만부교 낙타 사건 993년 고려가 건국된지 75년 되는 해로 이때가 고려 건국이래 처음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앞으로 27년 동안 거란의 큰 공격만 3 차례를 받게 된다. 거란과의 봉산군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선봉군 대장마저 포로로 붙잡혀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안융진 전투가 벌어지고 이번에는 고려군이 승리하면서 다급해진 거란 장수 소손녕은 초조해지면서 협상을 제안한다. 당시 고려의 대신들은 고려 영토의 일부를 내놓자고 했으나 서희가 이를 반대하며 소손녕을 만나러 갔다. 소손녕은 고려를 신라를 계승한 땅이라고 말했고 이에 서.. 더보기 거란의 2차 고려 침입: 강조와 양규 장군의 죽음 [이전글] 거란 1차 침입 993년 거란의 1차 침략 이후 1009년 고려에서는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켜 천추태후를 권좌에서 몰아낸 상황이었다. 이에 1010년 거란 6대 황제 야율융서는 강조의 변, 현종의 즉위를 거란 침략의 빌미로 삼아 그해 11월 거란 황제가 직접 기병 40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다. 이것이 거란의 2차 침공이었다. 거란 2차 침공 이유 거란은 건국 초부터 권력싸움, 갈등이 황제가 죽을때 마다 빈번했다. 고려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던 해 거란에서는 성종 모친 승천태후가 사망했다. 거란의 성종은 12세에 즉위하고 어린 황제 대신 어머니 승천태후가 섭정만 27년을 했던 것이다. 승천태후가 사망했으니 어머니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성종은 자신의 권위를 .. 더보기 천추태후 이야기 고려 천추태후는 태조 왕건의 손녀딸, 5대 경종의 후비, 6대 성종의 여동생이며 7대 목종의 어머니, 8대 현종의 이모가 된다. 고려시대 5,6,7,8 대 왕이 천추태후라는 인물을 거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고려 초기 12년간 섭정을 했고 외척과 간통해 악날한 왕으로 그려져 있다. 천추태후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사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고려사는 조선 전기 유학자들의 성리학적 관점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천추태후라 불린 이유천추태후가 거쳐했던 곳이 천추궁이였다. 아들 목종이 즉위하고 자신이 기거하던 수강궁 한켠에 어머니만을 위한 독채 천추궁을 만들어줬다. 천추는 천년의 가을이란 뜻으로 만수무강의 의미 아주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추궁에 있는 태후라는 뜻에서 천추태후라고 부른.. 더보기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해산 과정: 한성감옥 사진 속 20대 청년 이승만 모습 한성감옥 죄수들은 누구? 사진 속 이승만 대통령은 젊은 시절 독립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1899년 고종폐위음모에 가담한 죄로 역모죄로 무기징역 선고 후 쇠사를로 결박까지 당하면 한성감옥에 들어갔다. 이상재 선생은 황성기독교 청년회, 국내에서 YMCA 운동을 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고 그의 아들이 이승인씨로 사진 위에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찍은 사진의 장소는 구한말에 세워진 서대문형무소 이전의 한성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성감옥 역사 한성감옥은 조선에서 법무부 역할을 했던 기관으로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형조 관할의 전옥서 (감옥의 역할을 한 구치소같은 곳) 같은 곳으로 1894년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각종 기관을 근대적으로 개혁하면서 예전에 포도청이었던 곳을 경무청으로 바꾸고 경무청 산하의 감옥서.. 더보기 무주 나제통문의 비밀 전라북도 무주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3도의 접경지로 군 전체가 소백산맥에 속한다. 골짜기는 깊고 산세는 험준하다. 무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천동 계곡이다 제 1경 나제통문의 비밀 이 아름다운 무주 구천동은 삼국시대에 피로 물들었던 곳이다. 무주 구천동 33경의 시작점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석모산이 있는데 1500년 전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석모산을 경계로 말투와 생활이 다른 주민들이 살고 있다. 석모산 나제통문을 통해 신라와 백제 사람들이 왕래를 했다고 한다. 이 경계에 세워진 나제통문을 역사적 통로라 믿었다. 이 일대는 신라와 백제가 영토 확장을 위해 맞붙었던 곳으로 660년 백제가 멸망하기 전까지 영토확장을 위한 두 나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던 곳이다. 나제통문.. 더보기 만부교 낙타 사건 918년 고려가 건국되고 10세기 초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던 시기 한반도 서북쪽 시라무렌강 일대에 유목민들의 나라 거란이 세워진다. 훗날 926년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다. 약 8년간 고려와 발해는 공존했던 시기가 존재한다. 만부교 낙타 사건 942년 거란이 고려와 화친을 맺기 위해 사신 30명과 낙타 50마리를 고려에 보낸다. 왕건은 거란이 일찍이 발해와의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켰으니 이는 매우 무도하여 이웃으로 삼을수 없다고 했다. 이에 왕건은 거란 사신 30명을 유배 보내고 낙타 500마리를 만부교에 묶어 굵겨 죽인다. 만부교는 일만명의 인부가 동원되여 만든 다리로 개경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다리이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다리 밑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간 낙타 50마리였다... 더보기 캐럴 (= 케롤: Carol) 역사 131-3 캐럴의 어원은 옛 프랑스어로 둥글게 춤춘다는 의미인 Carole 그리스 헬라어로 피리 연주에 추는 춤이라는 Choraulien 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캐럴의 시작은 축제에서 춤추기 위한 음악이었다. 캐럴이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유행하게 된 계기는 1223년에 아시시의 성 프랑치스코가 예수가 태어난 것을 기리기 위해 마구간 앞에서 춤추면서 노래한 것이 민간에서 캐럴로 불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행사가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형태로 바뀐 시점은 불명확하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음악을 불신했다. 오르간을 포함해 가톨릭 음악을 악마의 음악으로 비판하기까지했었다. 그러나 마틴루터가 캐럴에 대한 음악의 인식을 바꾼다. 이후 개신교에서 캐럴로 다양한 찬송가를.. 더보기 산타 클로스는 존재할까? 131-2 산타 클로스 기원 지금의 산타 모습과는 다르지만 산타는 존재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3~4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며 성인으로 시성된 튀르키예 기독교 성직자 성 니콜라(270~343) 가 산타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평소 선행을 베풀었던 성 니콜라오스는 아주 가난했던 세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너무 가난한 집안이라 딸들을 팔아야 하나를 고민할지까지 생각할 만큼 가난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성 니콜라오스는 이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밤에 가복의 집을 방문해 창문 너머로 몰래 황금 세 덩이를 던저주고 갔다. 그런데 그가 던진 황금 세 걔가 떨어진 위치가 창문 너무 걸려 있던 양말 속으로 금덩이가 들어갔고 여기에서 크리스마스에는 양말에 선물을 넣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서기 343.. 더보기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떻게 확산이 되었나? 131 -1 유럽에서 시작된 크리스마스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계기는 영국에 의해서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전 세계 인구의 1/4 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영향을 받아 인도, 아프리카등 여러 나라에 크리스마스 문화가 전파되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시절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장식했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부근 앨버트 경은 독일 출신이었다. 이 앨버트 공이 독일의 트리 문화를 영국 왕실에 가져온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1517년 마틴루터가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마틴 루터가 밤에 전나무를 보는데 전나무에 별이 걸려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이에 전나무를 집에 가져와 장식물을 걸어줬다고 한다. 이후 .. 더보기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