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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에는 무엇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박물관 외관에도 피라미드 모습을 볼수 있듯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장 많은 전시물이 이집트 유물로 이집트관은 2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부터 이집트 그 자체인 대스핑크스상이 전시관을 지키고 있다. 입구를 지나오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볼수 있다.    * 도굴된 이집트 유물 : 루브르 박물관 속 람세스 2세 석상 및 파라오 어떻게 가져왔나?  도굴된 이집트 유물 : 루브르 박물관 속 람세스 2세 석상 및 파라오 어떻게 가져왔나?139-2 영국의 지오반니 벨조니는 이집트 유물 도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지오반니 벨조니는 이즙트로 건너와 기계를 만들어 팔던 인물로 1816년 룩소르 인근에서 석상 하나를 발견한다. 람세스 2jangane.tistory.com 더보기
* 사냥이 불러운 인간의 진화 :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 특성은 무엇?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선행조건은 직립보행을 들 수있다. 약 600만 년 전 인간과 침팬지가 분리되면서 인간은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250만 년전 인간은 사냥을 시작한다. 사냥은 인간을 그 전과 완전히 다른 종으로 진화시킨 사건이다. 그 이전에 인간은 채식을 했다. 이 사냥으로 인해 달라진 인간의 특징으로 두뇌 크기가 커진 것이다.  뇌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우리 몸에서 뇌의 무게는 단지 2% 지만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사용한다. 육식을 통한 다양한 영양소 섭취가 필요하고 사냥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칼로리 공급이 필요해졌다.   호모 에렉투스에 들어서면서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 상승하고 서로 대처법을 모방하면서 생존율도 증가했다.  인류가 사냥을 시작한 이유 채식.. 더보기
장례문화 사후세계 추모 언제부터 ? 사후 세계를 추모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만 5천~2만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의 평안을 기원하며 무덤에 부장품을 묻기 시작했다. 장례문화는 인류 진화 후반기에 발생했다. 한국 귀신은 왜 항상 여성인가? 공동묘지, 제사 유래 한국의 귀신은 왜 항상 여성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 이야기의 원형은 고려를 쳐들어온 홍건적, 왜구의 침입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도망 다니거나 jangane.tistory.com 더보기
바이킹의 땅 노르웨이 트론헤임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노르웨이 그 중 바이킹의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도시로 바이킹 시대 8~11세말 노르웨이의 옛 수도 트론헤임은 997년경 바이킹에 의해 무역거점으로 건설된 도시이다. 트론헤임 광장에는 바이킹 왕 올라프 트뤼그바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995년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재위 바이킹들을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지시하고 997년 트론헤임을 설립했다. 트론헤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나다로스 성당이 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국왕 올라프 2세의 무덤 위에 지어진 성당으로 노르웨이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다. 나다로스 성당은 수백 년에 걸쳐 건축되어 여러 건축 양식을 함꼐 볼수 있으며 외벽에는 성서 인물을 비롯해 노르웨이 왕, 주교상이 조각되어 있다. 성당 안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 더보기
무신정권 최강자 최충헌 권력 유지 비결 (역사저널 444) 고려 무신정권기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무신들은 정치 운용보다 권력의 주인이 되기 위한 세력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민심은 추락하고 전국에서 민란이 발생한다. 이 난세를 13년 동안 1인자였던 이의민을 처단하고 최충헌이 권좌에 오른다. 최충헌은 60년 최씨 정권의 포문을 열고 무신 정권 최강자로 등극한다. 무신정권 100년 간략요약 무신정권은 100년 동안 지속된다. 권력을 가장 먼저 잡은 이는 이의방이었다. 이의방에 의해 명종이 왕좌에 오르지만 이의방은 4년간 지속되고 정중부가 정권을 잡는다. 그 또한 5년간 지속하다가 경대승에게 넘어가고 4년뒤 경대승이 사망하자 이의민이 새롭게 권좌를 잡고 13년간 정권을 유지했다. 이후 최충헌이 권력을 잡게 되고 새롭게 왕을 교체한다. 23년동안 최충.. 더보기
대영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 로제타석에는 무엇이 기록되어있나? 139 -4 고대 이집트 유물이 유럽의 무분별한 도굴과 외교 수단으로 이용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이집트로부터 빠져나갔는데 이런 것들이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관을 채우게 된다. 1층 전시실 대영박물관은 1층과 2층에 걸쳐 이집트 유물을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는 거대한 유물이 가득하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과 다양한 파라오들의 석상을 볼수 있다. 로제타석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이집트 유물을 로제타석이다. 1799년 나폴레옹의 원정군에 의해 발굴되었으나 영국의 전리품이 되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거대한 석비에 새겨진 문서이다. 로제타석은 세 가지 서로다른 문자로 적혀있다. 이 비석에서 24명의 파라오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 로제타석에 의해 고대 이집트 문자의 뜻을.. 더보기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영국과 프랑스에 있는 이유 139 -3 이집트 유물이 해외에 훨씬 더 많은 이유 특히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유물이 이집트 현재 보다 더 많다. 많은 이집트 유물이 도굴되어 다른 나라로 반출되었고 이집트 유물을 통째로 가져간 사례도 많은데 그 중에 통째로 가져간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오벨리스크이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오벨리스크를 볼수 있다. 도굴은 아니지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전 앞에 세워두는 일종의 표지석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첨탑을 가진 단석체 조형물이다. 이집트 모하메드 알리 총도근 강대국과의 외교를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했다. 문제는 오벨리스크의 이동이었다. 오벨리스크는 단석체로 한개의 큰 돌덩어리를 훼손하지 않고 옮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약 3년간 전용 선박과 운반 기계를 제작해 기계를 이용해 오.. 더보기
여수 고소대, 선소 유적 여수는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여수 밤바다.. ~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전투를 지휘했던 고소대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고소대는 전라좌수영 성체를 보완해 만든 대포 발사대, 포루이다. 예전에는 고소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비각만 남아있다. 고소대 (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 수군대첩 비각 옆 타루비가 있다. 타루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1603년 이순신이 전사한지 6년 뒤 (선조 36) 에 이순신 휘하에 있던 좌수영의 군인들이 이순신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전라도 정읍 현감 이순신이 여기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에 부임했다. 계급은 전라좌수사, 지금의 1함대 사령관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군정은 문.. 더보기
대한민국에 김씨가 많은 이유 : 천민성씨 성씨, 본관기원., 한국 성씨가 적은 이유 성씨의 기원 지금과는 달리 고려 초기에는 성씨가 있는 사람이 적었다. 과거 고려 초기까지도 성씨를 가지는 건 특권이었다. 박혁거세라는 이름의 박도 후대에 붙여진 성이다. 삼국사기에 박씨 성을 쓴 사람의 기록은 없다. 고구려를 세운사람은 주몽이다. 그러나 고주몽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후대에 고씨 성을 붙였기 때문이다. 신라왕의 성씨 김씨와 석씨 또한 자손들은 이름만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부터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성씨를 사용했고 중국과 교류하는 순서대로 고구려-백제-신라 순으로 우리나라도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공자의 성은 공, 이름은 구로 공구이다. 장보고의 경우도 원래 이름은 궁복이다 그래서 당나라에 갔을 때 가장 많은 성씨가 장씨였고 이를 가져온 것이다. 왕건의.. 더보기
청와대 소정원 , 대통령 관저 소정원 청와대 소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걸었던 길이 있고 사망이 뚫려있어 청와대 본관, 관저등, 모든 건물로 통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야생화로 가득하다.    청와대 구본관 터 고려때 부터 청와대 자리는 명당으로 불렀다. 1990년 청와대를 새로 만들 때 청와대 자리 길지를 알리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천하제일복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연릉오거라는 사람이 새긴 글로 중국 남송 시대 연릉 지역에 살았던 명필 오거의 글자를 집자해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 글씨를 새긴 시기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위해 원납전을 백성들에게 받아야 했는데 원성이 커지자 왕권강화, 민생 안정을 위해 천하제일 명당에 궁궐을 중건해야 한다는 명분이 필요해서 민심을 달래기 위한 흥선대원군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