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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History

수제비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시대 수제비 종류 수제비 기원 수제비는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복날에 몸 보신을 위해 먹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밀가루는 왕에게만 올렸던 귀한 재료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밀가루를 귀한 가루라는 뜻의 '진가루'라 불렀다. 그래서 밀가루 대신 다른 곡물가루로 만든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곡물가루로 만든 수제비는 조선시대 이전에도 먹었던 음식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 수제비 ★ 메밀가루 수제비조선시대에는 밀가루보다 비교적 구하기 쉬웠던 메밀가루가 있는데 메밀가루에 물을 부어 풀 쑤듯 묽게 반죽한 후 먹었다.  제주도 지역에서 옛날 방식의 수제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조베기라고 부르는데 수제비의 제주도 방언으로 제주도 식 수제비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있다.   ★ 영롱발어 조선시대 영롱발어라고 해.. 더보기
한국인이 삼겹살을 많이 먹는 이유 옛날 조선에서 키웠던 돼지는 35kg정도로 작았다. 현재 돼지의 1/3크기로 부위를 나눠서 먹기보다는 통째로 삶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삼겹살은 지방과 살의 겹이 3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부위를 말한다.  100kg 돼지를 잡으면 삼겹살은 10kg 뿐인데 가장 많이 판매되는 부위이다. 외국에서 삼겹살은 베이컨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는 비인기 부위이다. 한국인은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삼겹살을 많이 먹는다.  옛날 우리가 돼지고기를 먹는 방식은 삶아서 먹는 수육 형태였다.1960년대 후반 수출용 돼지를 키우면서 한국인에게 돼지고기가 넉넉하게 공급되었다. 그러나 이것에는 불행한 역사가 숨어있다.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1970~80년대 일본은 기록적인 경제 호황기를 맞으면서 고.. 더보기
벌교 꼬막이 유명한 이유 꼬막은 사계절 나지만 6월에서 8월이 꼬막의 주 산란기로 11월~3월 겨울이 꼬막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는 제철이다. 정말 옛날에 꼬막은 너무 싸서 밥반찬이라기 보다는 간식으로 먹었다. 요즘음 밥반찬 뿐만 아니라 안주로도 꼬막을 많이 먹는다.   1. 갯벌 조건 모래가 많이 섞인 서해보다는 남해의 강진만, 보성만,여자만 등 만이 발달해 있고 이쪽의 갯벌 모래는 아주 곱고 사람이 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고운 갯벌이라 깨끗한 환경과 같힌 만 형태로 꼬막의 풍부한 영양 섭취에는 최적화된 조건으로 전국 꼬막의 85%는 전라남도에서 생산된다. 그 중에서도 벌교를 포함한 보성군에서 전라남도 꼬막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벌교는 압도적인 생산량을 자랑하는 꼬막의 성지라고 볼수 있다.   상품.. 더보기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 부른 이유 부대찌개는 한국 전쟁(1950~1953) 후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잉여 식재료(스팸, 소시지, 햄 등)와 한국식 고추장, 김치, 두부 등을 활용해 만든 음식이다. 당시 음식 재료가 귀했던 시절, 미군이 제공한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창조했는데, 이를 "부대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찌개"라 하여 "부대찌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가 즐겨먹는 부대찌개를 한때 존슨탕이라고 불렀다.  "존슨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 부르게 된 이유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군 부대와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부대찌개는 전쟁 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잉여 식재료(스팸, 소시지, 햄 등)를 한국 고유의 재료인 고추장, 김치, 두부 등과 결합해 만든 음식이다. 그런데 "존슨탕"이라는 이름은 1966년 미국 대.. 더보기
나주 삭힌 홍어의 발원지인 이유.. 나주를 대표하는 맛의 거리 영산포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선착장는 나주를 대표하는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삭힌 홍어 나주 영산포는 삭힌 홍어의 발원지이다. 보통 사람들은 홍어는 흑산도로 생각하지만 흑산도는 홍어가 잡히는 곳이고 나주 영산포는 옛날부터 홍어 삭히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흑산도는 생물 홍어가 유명하고 나주 영산포는 삭힌 홍어가 유명하다.  삭힌 홍어를 부드럽게 먹는 방법은 홍어삼합으로 묵은지, 수육 , 홍어를 함께 먹는다. 그러나 나주 영산포 사람들은 삭힌 홍어에 초장에 찍어서 먹는 것을 즐긴다.  삭힌 홍어 발원지가 된 배경고려 공민왕때 왜구의 침입이 많아지니 섬을 비우게 하는 공도 정책이 내려졌다. 흑산도, 영산도 주민들이 영산강을 따라 나주로 향하게 되었고 뱃길로 보름정도 걸리는.. 더보기
천안 호두과자 유명한 이유 호두과자는 일본에서 서양식 제과기술을 배워온 한국인 조귀근씨가 1934년 개발하여 천안 학화제과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호두 나무 유래 천안에 원래 호두나무가 많았다. 천안 광덕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는데 그곳에 수령 600년 이상된 호두나무가 있다. 고려의 외교관 류청신이 원나라에 가서 호두나무 하나를 가져와 천안 광덕사에 심은 것이 천안 호두나무의 시작이다.   천안 호두과자가 유명한 이유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반드시 파는 호두과자는 지역의 이름을 음식에 붙여서 전국화된 첫번째 사례였다. 경부선과 호남선, 전라선 등 모든 일반 철도는 천안역을 지난다. 많은 기차가 거쳐 가는 만큼 정체도 심했는데 이를 눈여겨 본 천안역의 호두과자 집 하나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역에서 호두과자를 팔기 시작했다. 기차 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