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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History

진도 홍주 유명한 이유 :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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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주도 맑고 일본 사케도 맑고 중국 바이주도 맑다. 한국에 선명하게 붉은 전통주가 하나 있는데, 그 붉은색은 색소가 아니다. 뿌리에서 나오고, 그 뿌리는 알코올에만 색을 내준다. 그래서 이 술의 도수는 누가 정한 것이 아니다.

 


증류까지 해서 그 색을 얻으려 한 이유는 술보다 훨씬 앞선다. 한국인은 삼국시대부터 이 뿌리로 천을 자색으로 물들였다. 조선에서는 부유한 집이 입는 자색 비단을 물들였는데, 그 색을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염색 비용으로 살림이 무너질 정도가 됐다. 그래서 1400년대에 세종이 거의 모든 신분에게 자색 옷을 금했다. 로마에서 황제의 자색을 바다 고둥에서 뽑고 평민은 입지 못하게 한 것과 같다. 재료만 다르다.

그러니 이 뿌리는 증류기 근처에 가기 전부터 신분을 뜻했다. 붉은 술은 그냥 보기 좋은 술이 아니라, 입는 것이 금지됐던 색이 잔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양반의 염료 식물이 술병에 들어간 경위

이 뿌리는 한국말로 지초, 영어로 그롬웰 뿌리라고 한다. 안에 든 색소가 알코올과 기름에는 녹고 물에는 거의 녹지 않는다. 뿌리를 물에 넣으면 물이 그대로 맑다. 한국에서 흔히 파는 탁한 쌀 술 막걸리에 넣어도 거의 변화가 없다. 40도 이상 증류주를 부어야 색이 나온다. 그러니 이 술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독한 술을 원한 게 아니라 붉은 술을 원했고, 40도는 그 색을 얻기 위해 치른 값이다. 지금 파는 제품은 35도, 40도, 60도이고 그보다 낮은 것은 없다. 도수가 낮으면 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초의 뿌리는 주변 흙과 겨울 눈까지 붉게 물들인다.

 

지초가 왜 집집마다 있었나

진도 집집마다 지초 뿌리 서너 개를 늘 갖고 있었고, 1960~70년대까지 그랬다. 약으로 쓰려고 둔 것이다.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면 지초 뿌리에 참기름을 붓고 약한 불로 다려 먹였다. 가루로 만들어 체했을 때 먹였다.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환부에 발랐다. 섬사람들은 이것을 만병통치약이라 불렀다.

 

이 술이 진도에서 나온 이유가 여기 있다. 지초는 이미 약으로 부엌에 있었고 집에서 쌀 증류주를 내리는 것도 흔한 일이었으니, 지초는 물에는 성분이 빠지지 않고 도수 높은 술에만 빠지니, 약을 쓰려면 술에 담가야 했다. 그리고 도수 높은 술에 담그는 것이 약을 오래 두는 방법이다. 참기름은 몇 달 지나면 상하지만 40도 술은 뿌리 성분을 몇 년씩 붙잡고 있고, 병에 담아 들고 다닐 수도 있다. 그래서 홍주는 마시고 즐기는 술로 시작한 게 아니라 집안 약을 오래 보관하는 형태로 시작한 것이다. 옛 문헌은 이것을 그냥 술이 아니라 약술로 적어 놓았고, 지금 법에서도 소주가 아니라 재료를 넣어 향과 색을 낸 술, 즉 리큐르로 분류한다. 

 

 

 

가짜 홍주를 가려낸 방법

홍주는 색으로 팔리는 술이라, 지초를 쓰지 않고 색소만 타서 붉게 만든 술이 돌았다. 진도 사람들은 그걸 가려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술 한 숟가락을 달걀 흰자에 섞으면 진짜 홍주는 푸르게 변하고, 색소를 탄 술은 그대로 붉다.

이 방법이 통하는 이유는 지초 뿌리의 붉은색이 액체가 산성이냐 알칼리냐에 따라 색이 바뀌기 때문이다. 화학에서는 이런 물질을 pH 지시약이라고 부른다. 산성에서 붉고 중성에서 자색, 알칼리에서 파랗다. 달걀 흰자는 알칼리라 진짜 홍주는 파랗게 변할 수밖에 없고, 색소는 그냥 붉은 채로 있는다.

알칼리에서 파랗게 변하는 성질을 이용한 방법이 지금 실제로 쓰이고 있다. 이 색소를 넣은 식품 포장 필름이 연구되고 있는데, 고기나 생선은 상할수록 알칼리로 변하니 필름이 붉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고 포장 밖에서 신선도를 읽을 수 있다. 1400년대에 양반의 자색 비단을 물들인 색소가 지금은 마트 포장재의 부패 감지 센서 후보다.

 

 

 

 

 

왜 이 제법이 진도에만 남았나

붉은 증류주는 원래 한국 여러 지역에서 만들었다. 살아남은 곳은 진도뿐이고, 섬의 집안 전승은 이렇게 설명한다. 1608년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그 형 임해군이 역모로 몰려 진도 유배가 결정됐다. 임해군의 부인이 조카 허대를 불러 유배지까지 따라가 보살피라고 부탁했다. 허대는 임해군이 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소줏고리를 챙겨 먼저 진도로 내려갔다. 그런데 유배지가 강화도로 바뀌었다. 임해군은 오지 않았고 허대는 그대로 진도에 남아 진도 양천 허씨가 됐다.

소줏고리를 챙겨 왔다는 부분은 공식 기록이 아니라 집안 전승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유배와 유배지 변경은 기록으로 확인된다. 

허대의 후손들이 한국 남종화의 가장 중요한 계보를 만들었다. 1808년에 태어난 소치 허련, 그 아들, 그 손자 남농 허건까지 3대가 진도의 한 집 운림산방에서 나왔고, 그 집은 지금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정부가 진도홍주 기능보유자로 지정한 허화자도 같은 집안 사람이고, 1930년에 태어나 2013년에 죽었다.

 

 

소줏고리와 지초가 만나는 지점

제조는 누룩, 발효, 증류 세 단계다. 전통 방식에서는 소줏고리에서 나온 뜨거운 술이 출구에 놓인 지초 바구니를 통과하며 떨어진다. 색은 나오는 길에 입혀지는 것이고 나중에 섞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일부 제조장은 색소를 먼저 추출해 원주에 넣는데, 그쪽이 빠르고 색이 균일하다.

이 차이 때문에 옛날부터 진품 판별법이 있다. 종이컵에 따르면 진짜는 컵에 색이 배고 고운 지초 찌꺼기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색이 움직여야 한다. 보름 정도는 붉고, 이후 서서히 흑갈색으로 가고, 5년쯤 되면 진한 흑갈색이 된다. 색이 끝까지 변하지 않는 병은 인공적으로 색을 낸 것이다.

 

 

 

 

 

 

양식 재배한 지초는 이런 색이 안나옴.

 

목숨을 구한 술이라는 평판

진도 뱃사람들은 바다에 나갈 때 이 술을 한 병 배에 챙겨 갔다. 그 이유는 행운의 술로 여겼기 때문이다. 1479년 조선 9대 왕 성종이 대신들을 불러 왕비 윤씨의 지위를 빼앗을지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성종은 1469년부터 1494년까지 왕이었다. 윤씨가 질투가 심하고 왕에게 손을 댔다는 것이 이유였고, 싸우다가 성종의 얼굴을 긁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회의에 불려간 대신 중에 허종이 있었고, 부인이 가지 말라고 했다. 윤씨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언젠가 왕이 될 것이니, 어머니를 쫓아내는 데 찬성한 대신은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침 부인은 허종에게 홍주를 부어 말에 앉지 못할 만큼 취하게 만들었다. 허종은 다리를 건너다 말에서 떨어져 회의에 가지 못했다.

 

1504년 그 아들인 조선 10대 왕 연산군이 어머니를 쫓아내는 데 찬성한 대신들을 찾아 죽였다. 연산군은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왕이었다. 허종의 집안은 그 명단에 없었다. 허종이 떨어진 다리에는 그와 동생 허침의 이름을 합쳐 종침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위치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이고, 인왕산에서 내려와 경복궁 서쪽을 지나던 백운동천이라는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였다. 개울은 오래전에 덮였고 다리도 없어졌지만 표석은 지금도 정부종합청사 뒤 종교교회 앞에 있다. 경복궁 관광버스 주차 지점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그래서 진도를 떠나는 뱃사람은 홍주 한 병을 챙겨 갔다. 부인이 술을 먹였다는 부분은 공식 기록에 없고 진도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다.

주류 단속이 부잣집 술을 가난한 여자들의 생업으로 바꾼 과정

1945년까지 이 술은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 당연히 담그는 술이었다. 그 뒤 주류 단속이 강화되고 가정 증류가 사실상 막혔다. 부유한 집은 잃을 것이 더 많아 손을 뗐다. 가난한 집 여자들은 수입이 필요해서 몰래 내려 팔았다.

그래서 전승 경로가 예상과 거꾸로다. 1994년 전라남도가 진도홍주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을 때 보존 대상이 된 기술은 면허받은 양조장이 아니라 불법 부엌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1993년에 진도전통홍주보존회가 먼저 생겼고, 2007년 홍주는 한국 전통주 최초로 농산물 지리적표시 제26호를 받았다. 진도에서 나온 쌀과 지초만 들어갈 수 있다. 2024년 기준 7개 업체가 만든다.

375밀리리터 한 병이 약 14,000~16,000원, 미화 10~11달러 정도다. 1.8리터가 약 30,000~34,000원, 21~24달러 정도다. 지리적표시를 받은 40도 증류주 값으로는 싼 편이고, 그 이유는 대체로 한국 밖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도에 오는 사람들이 하는 것

진도에 홍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무엇을 하러 오는가. 크게 세 가지다. 바닷길을 걷고, 울돌목을 보고, 운림산방에 들어간다. 홍주는 나가는 길에 산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건 바닷길이다. 음력 2월 말에서 3월 사이 대조기에 1년에 두 번, 진도와 모도라는 작은 섬 사이의 물이 충분히 빠져 길이 2.8킬로미터쯤 되는 바다 밑이 드러나고, 수천 명이 장화를 신고 그 위를 걸어서 건넌다. 한국인은 신비의 바닷길이라 부르고 외국인은 보통 한국의 모세의 기적이라 부른다. 열려 있는 시간이 한 시간쯤이라 그 이틀 동안 섬이 꽉 차고 양조장 홍주도 다 팔린다.

 

울돌목은 진도대교 아래의 좁은 물길이고 물살이 11노트쯤으로 흐른다. 1597년 이순신이 여기서 13척으로 100척이 넘는 일본 함대를 상대한 명량해전을 치렀고, 조류 시간을 계산해서 이겼다. 좁은 물길을 막고 버티다가 물살이 일본 함선 쪽으로 바뀌는 순간 배들이 서로 부딪히게 만든 것이다. 바닷길이 열리는 물도 몇 킬로미터 떨어진 같은 물이다. 진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가는 두 곳이 둘 다 조류로 설명되는 이유다.

 

운림산방은 허씨 집안이 3대에 걸쳐 그림을 그린 집이다. 입장료가 조금 있고 걸어서 보는 데 한 시간쯤 걸린다. 홍주가 나온 그 집안이라,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이 집을 보고 싶어 한다. 홍주 자체는 양조장과 특산품점에서 산다. 35도, 40도, 60도를 나란히 놓고 무료로 시음시켜 주는데, 사람들이 놀라는 쪽은 60도다. 예상하는 것처럼 목을 쏘지 않기 때문이다.

 

단골 질문

 

"어디서 사나? 비행기에 실어도 되나?" 진도 양조장·특산품점, 서울 전통주 전문점, 온라인에서 산다. 40도는 대부분 국가의 기내 면세 주류 기준 안에 들어가지만 도수 60도 제품은 나라마다 제한이 걸릴 수 있으니 해당 항공사와 도착국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몇 도짜리를 사야 하나?" 선물이면 40도, 마셔 보려면 시음에서 60도까지 비교해 보고 고르는 쪽이 낫다.

"왜 유명하지 않나?" 진도에서 나온 쌀과 지초만 쓰는 지리적표시 술이고 제조업체가 7곳뿐이라 생산량 자체가 작다. 수출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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