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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제 2땅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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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력충돌은 충격이었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첨단무기로 공세를 퍼부었으나 하마스의 비밀 땅굴이 발견되면서 무력충돌이 장기화되었다.  사실 하마스전에 한국에서 발견된 땅굴들은 핵폭탄보다 무서운 남침용수단이다. 

 

1970년대 한국은 전후복구사업을 수립 경제개발5계년 계획을 수립하고 남북관계 또한 발전이 있었다. 적대적 대결에서 남북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72년 7월 4일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 ) 남북은 통일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이것은 1971년 냉전시대 최대의 사건, 미중 핑퐁외교, 1972년 미 중 정상회담등으로 국제적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중이였다. 이때 대북 확성기도 멈췄다. 

 

김일성 또한 국제정세에 발맞춘 평화공세를 펼쳤으나 모두 거짓이었다. 1974년 연천 제 1땅굴이 발견, 이후 1973년 수색 중 진동을 감지하고 이후 주의를 수색하던 중 땅속에서 수상한 폭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당시 땅굴감지를 위한 장비가 미비해 궁여지책으로 야전병원의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1973년 11월  최초로 수상한 소리를 들은 이후 12월에 정체불명의 소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이듬해 7월 다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땅굴 의심 지역을 2m 간격으로 시추해 45개의 시추공 작업 끝에 정상보다 짧은 시추기둥이 나오게 되고 이것은 빈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1975년 3월 19일 제 2 땅굴이 그렇게 발견된다. 제 1땅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땅굴이었다. 제 1땅굴에서 47km떨어진 곳이었다. 

 

 

제 2 땅굴은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2개의 광장과 3개의 출구가 발견되었다. 7명의 병사가 일렬로 서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제 1 땅굴(서부전선) 발견, 제 2땅굴(중부전선)이 발견되었는데 철원은 김화, 철원, 평강을 연결하는 철의 삼각지대로 한국전쟁 당시 아주 격전지였다. 

 

 

제 2땅굴 발굴과정에서 북한이 설치한 부비트랩과 지뢰에 의해 8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후 김일성은 땅굴을 판것을 인정했으나 남침용이 아닌 대피용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땅굴을 파는 이유

전쟁 발생시 화학전과 원자폭탄전시 지하에 들어가기 위한 대비이다. 북한 주요시설은 이미 지하 갱도에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인 건 평양지하철이다. 깊이 100m 터로 유사시 김정일이 대피할 수 있는 땅굴이 존재한다. 이 대피 땅굴은 남포의 바닷가와 이어져 유사시 중국으로 대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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