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벌교에가서 주먹자랑으로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유는 과거 벌교는 조그만 갯마을이었는데 일제때 전남 송정리와 삼낭진을 연결하는 경전선 철도가 연결이 되면서 벌교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벌교는 아주 중요한 항구도시로 한국의 좌우 갈등과 남북 대결의 현장이자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지이다. 그래서 벌교 여행할때 소설 속 공간들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코스가 잘 발달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이란?
태백산맥이란 용어는 일본 학자에 따른 것으로 현재는 선조들의 개념 따라 '백두대간' 을 사용한다. 소설 태백산맥은 문학 평론가 48인이 뽑은 80년대 최고의 문제작 1위, 현역작가와 평론가 50인이 뽑은 한국의 최고 소설이다. 80년대 후반 태백산맥이 나왔을때 엄청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연재기간 6년동안 10권으로 완간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열심히 책이 나오기만 기다렸다가 구매했다.
80년대 중반까지도 빨지산 얘기를 문학에 쓴다는 건 불가능했고 쓴다 하더라도 공산당을 욕할 때만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 태백산백은 달랐다.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과 그 후 6.25전쟁에까지 이르는 민주화 시대의 관점에서 보는 우리의 근대사를 보여줬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들이 굉장히 열광했던 소설이다.
태백산맥 문학관
벌교에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어서 소설 태백산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만드시 방문하는 코스 중 하나이다. 총 2층으로 총 6개의 세부주제로 구분돼 있으며 1층은 주로 태백산맥에 대한 내용을 2층은 조정래 작가에 대한 공간으로 마련돼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준비과정과 조정래 작가의 문학 세계등을 볼수 있는 곳이다.
소설 태백산맥은 무려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에 달하는 분량의 소설이다. 이런 소설 분량을 3번이나 다시 썼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쓴 육필 원고 한본, 아들에게 자신의 성실함을 알려주기 위해 아들에게 1권부터 10권까지 손으로 받아 적은 것이 있고 또 며느리가 쓰고 있다고 한다.
벌교 속 소설 배경지
소설 태백산맥의 문학 기행길은 보성여관을 시작으로 벌교 금융조합- 벌교 홍교- 김범우의 집- 소화다리 -태백산문학관- 소화의 집- 현부자네집 -벌교역(철도길)- 중도방죽 순으로 여행하면 좋다.
소화의 집
태백산맥 문학관 옆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소화의 집도 복원되어 있다. 정하섭이 무당의 집으로 숨어들어 소화라는 무당의 딸과 애뜻한 사랑을 한다.
소화다리
소설 속 배경지 중 하나 남도 여관(보성여관)과 소화 다리도 볼수 있다. 소화 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용교였는데 이곳은 비극적인 현대사 민간인 학살 현장이기도 하다. 소설 태백산맥 속 소화다리 묘사 장면이 있다.
**벌교 지명의 기원
또한 소화다리에서 조금 상류로 올라가면 소설 태백산맥 속 염상진이라는 인물이 지주들에게 빼앗은 쌀을 소작농들에게 나눠주었던 홍교가 등장하는데 홍교는 예전에 다리 형태가 아닌 뗏목들을 연결해서 만들어낸 부교인데 뗏목 벌자를 써서 지금의 지명 벌교라고 불렀고 지금 벌교 지명의 기원이 된 곳이다.
부용산
해발 190M 의 낮은 언덕같은 부용산에 오르면 벌교를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데 단순히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도방죽
벌교천은 바닷물이다. 중도방죽은 일본인 중도의 이름을 따 붙여진 간척지로 일제 시대 일제가 중도방죽 일대를 간척지로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하고 모든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현부자네 집
현부자네 집은 소설 태백산맥의 첫 문을 여는 장소로 등장하는 곳이다. 1939년에 지어진 일본 건축 양식으로 박씨 문중의 제각이다. 소설에서는 현부자네로 묘사되고 있고 소설 속 애틋한 사랑과 당시 지주와 소작농 계급 간 갈등이 그대로 전해지는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 속 내용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원녀의 딸 소화가 사랑을 시작한 장소이다.
특히 현부자는 대문채 2층 누각에 앉자 중도 들판을 내려다 보며 소작농을 감시하고 기생들과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보성 구 벌교 금융조합
벌교 시에는 수탈의 중심이었던 1919년 건립된 옛 벌교 금융조합이 있다. 르네상스식 바탕에 절충주의적 양식 건물로 전형적인 일본식 관공처 건물로 일제 강점기 금융조합으로 사용되었다. 광복이후 방치되었던 건물을 복원했다.
경전선 철도길
일제는 식량수탈의 목적으로 벌교에 육로, 수로, 철로까지 만들었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놓여졌다. 보성군에 간이역이 7개가 있었을 만큼 물자가 벌교에 많이 모였고 부산에 있는 부전역까지 물자를 나른 후 부산에서 일본으로 물자를 이동했다고 한다.
소설 태백산맥 덕분에 벌교 꼬막이라는 고유명사가 생겨났을 정도로 벌교 꼬막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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