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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일본 야쿠자 기원 , 조직문화 (가오, 이레즈비, 나와바리) 128 -1

야쿠자 기원  

일본의 문제이자 골치거리 야쿠자는 도쿄에서 시작되었다.  야쿠자의 기원은 에도 막부시대로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수지역과 시코쿠지역을 평정한 후 대대로 살고 있던 이예야스의 근거지를 강제로 빼았아 이예야스는 낯선 에도로 옮기게 된다. 

 

 

 

쫓겨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지역을 정비하고 발전시켰는데 그때 당시의 에도는 현재의 도쿄이다. 이후 도쿠가와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전국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에도막부시대가 찾아온다. 이로 인해 하급 사무라이들은 내전이 끝나자 직업을 잃고 쓸모없는 존재들이 되자 결국 마을의 질서를 유지해 주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야쿠자의 첫 조상이다. 

 

 

야쿠자 이름의 기원 

일본 도박중에 산마이 카루타가 있는 패를 세장 뽑고 모두 더했을때 일의 자리가 9에 가까울수록 승리하는 게임인데 이때 8,9,3을 뽑으면 뒷자리 0이 쓸모없는패가 되고 8,9,3 을 일본어로 야 쿠 산이라고 불러 쓸모없는 패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변경되어 야쿠자라는 설이 있다. 

 

 

 

현대 야쿠자의 시작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천황을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한 시대였다. 이때 근대화된 도시들에서 현대 야쿠자의 시초가 등장한다. 

 

야쿠자들이 탄생한 도시

 

현대 야쿠자들의 탄생도시는 모두 바다에 인접해 있는 항구도시였다. 그 이유는 당시 개항한 항구도시를 통해 해외물자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었으나 그에 반해 항구도시는 현대화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항구에 최대한 가깝게 선박을 정박하면 소형 배를 타고 화물을 싣고 연안으로 옮겨야 했던 이들 항만 노동자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화물을 창고까지 옮기기까지 해야 했다. 

 

 

 

구미 

1905년경 고베항 항만 노동자들은 약 1300명정도였다. 이들중 90 %는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조합이었고 항구에서 결성된 일용직 노동자 조합을 ... '구미' 라 불렀다.  

 

 

가오 

조합이 만들어지고 이권과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계약을 차지해야했고 이로 인해 조합끼리의 이권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당시 조합간의 싸움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인물을 '가오'라고 불렀는데 일본어로는 얼굴이라는 뜻이었고 당시에는 체면, 자존심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야쿠자의 자존심'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오를 중심으로 여러 조삽이 뭉쳐서 더욱 거대한 조합을 결성하게 되고 이렇게 현대 야쿠자의 근간이 만들어지게 된다. 

 

야마구치파의 탄생 

이렇게 생겨난 야쿠자 조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넓혀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고베에서 탄생한 야쿠자 조직이 있는데 야마구치파이다.

 

야마구치 하루키치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가 인부들을 규합하여 설립하였고 현재 일본에서 최대 규모의 야쿠자 조직이다. 조직원만 약 9000명정도이고 세계 범죄 조직중 3위의 자금력을 가진 세력과 규모가 있는 야쿠자이다.  

 

세계 주요 범죄 조직의 자본력

 

야쿠자의 조직문화 

야쿠자의 세계는 독특한 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한다. 두목과 조직원의 관계에 부모 자식 관계를 맺고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라고 한다. 보통 보증인이 있어야 조직 가입이 가능하고 이후 수련 기간도 필수였는데 3~5년 정도 기간을 '헤야즈미'라고 불렀다. 이후 사카즈키 의식을 치러야 했다.  조직원들의 잔에 술을 채우며 시작되는 의식은 두목과 새로운 조직원이 서로의 잔에 술을 채우고 마실 때 혈연관계 이상의 깊은 관계가 성립된다는 의식이다. 그리고 두목에게 받은 술잔을 잘 보관했다가 조직을 탈퇴할 때 반납해야한다.  

 

야쿠자 조직 구성도

 

이레즈미

조직원이 되면 경찰청의 폭력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야쿠자들은 감시를 받게 된다. 대부분의 야쿠자는 평생 야쿠자의 길을 가겠다는 야쿠자의 문신 이레즈미를 새기게 된다. 

 

 

그러나 이레즈미를 새기는 본래의 이유는 인내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말그대로 고통과 아픔을 참아 몸에 새긴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 고통은 마치 녹슨 면도칼로 살을 자르는 느낌의 고통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나무 막대에 여러 바늘이 달려 있는 도구를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새겼기 때문에 더욱 고통이 심했다. 도구를 피부에 찔러놓고 먹물을 주입해서 조각처럼 새기는 것이 일본 문신의 전통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할 경우 전신은 2년에서 3년정도 걸린다. 

 

문신 도구 

 

 

조직은 두목과 조직원이 피라미드 구조로 형성되었고 또한 조직의 유지를 위해 모든 조직원들은 거의 매달 목숨처럼 상납금을 바쳐야했다.  이때 조직원들은 더 많은 상납금을 낼수록 승격될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 많은 상납금을 내려고 한다. 

 

 

나와바리

그리고 이 상납금이 야쿠자가 불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근거지에 있는 가게들에게 자릿세를 걷거나 조직의 허락을 받고 다른 야쿠자의 관리 지역을 침범해 이권을 수탈하기도 한다. 야쿠자의 세력권을 일컫는 말로 나와바리가 있다. 15세기 중반 성곽이나 돌담을 만들때 구상하는 방법으로 '땅 위에 줄을 친다' 는 뜻이 있다. 

 

 

 

많은 조직의 상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충성심을 고취시켜 조직이 흔들리지 않게 엄격한 벌이 존재한다. 손가락을 한마디씩 자르거나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일본도를  새끼손가락부터 순차적으로 잡았는데 그럴때 마다 검을 쥐는 힘이 약해진다는 점에서 착안한 처벌이었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은 죄를 지으면 새끼손가락부터 한 마디씩 잘리는 벌을 받았다. 그래서 동일하게 칼을 쓰는 야쿠자에게도 상징적이고 잔혹한 벌이었던 것이다. 

 

조직을 배신하거나 조직에 큰 피해를 입힌 자는 조직에서 쫓겨나는 파문을 당한다. 조직에서 내쫓김과 동시에 올타리가 사라져 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파문을 당한 야쿠자는 한때 형제였던 조직원에게 린치를 당하거나 적대 관계 조직에게 살해를 당하는 등 평생 죽음의 위협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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