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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갈등 역사/ 유니언 잭 탄생 126 -2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잉글랜드에는 왕위 논란이 퍼진다.  잉글랜드 존재했던 가톨릭 세력은 엘리자베스 1세가 시녀의 딸이자 사생아라 왕위 계승권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여왕으로 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메리는 헨리 8세의 누나인 마거릿 튜더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의 후손으로 튜더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을 모두 이어받았기 때문에 가장 정통성있는 왕위 계승자라는 것이었다. 개신교가 장악한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세력 확장에는 메리가 유리하다고 판단이 숨어있었다. 이렇게 5촌 지간인 메리와 엘리자베스 1세의 라이벌전이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라이벌전

프랑스 왕 앙리 2세는 메리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메리의 공식 왕실 문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메리의 문장은 프랑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문장을 섞어서 만들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왕실문장

 

이는 엘리자베스 1세의 권위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이자 메리의 잉글랜드 왕위 계승 자격을 기정사실화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메리를 스스로를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자라고 주장하는 것을 즐겼다. 메리가 왕실 문장으로 도발할때 엘리자베스 1세를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559년 프랑스 마상창시합에서 앙리 2세가 눈 쪽에 심한 부상을 입고 결국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메리의 남편 프랑수아 2세는 16세의 나이에 프랑스 왕위에 오른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가 된 메리는 잉글랜드에 맞설 강력한 권력을 쟁취한다. 

 

에든버러 조약 

 이때 엘리자베스 1세는 스코틀랜드 내 개신교의 반란을 주도했던 존 녹스와 개신교 세력을 지원했고 이를 위해 잉글랜드 군대까지 지원해줬다. 내란이 심해지면서 스코틀랜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종교 분쟁의 중심지가 되었고 게다가 1560년 6월 메리 대신 섭정하던 어머니가 건강악화로 사망한다. 그래서 드디어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돌입한다. 이 협상이 에든버러 조약이었다. 

 

에든버리 조약 내용

 

이조약은 전쟁을 끝내고 싶으면 메리가 잉글랜드 왕이 계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인정하라는 엘리자베스의 협박이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의 내전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개신교 귀족들은 메리의 이복오빠 제임스 스튜어트를 섭정인으로 세웠다. 그리고 1506년 7월부터 존 녹스와 개신교 신자들이 선봉이 되고 스코틀랜드는 개신교 국가로 탈바꿈한다. 

 

메리의 계속된 불행 

그러나 메리의 불행은 계속되었다. 메리의 남편이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2세는 17개월 만에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한다. 메리는 남편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의 왕비로써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메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어머니는 메리의 거처를 변방으로 옮겨버렸다. 

 

고민끝에 메리는 모국 스코틀랜드로 귀환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메리는 귀족 단리경과 결혼한다. 그녀가 단리경과 결혼한 이유는 단리경은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가문의 핏줄이었고 그의 할머니이자 헨리 8세의 누나였던 마거릿 튜더로 인해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마디로 친인척 관계였다.  

 

 

 

메리는 단리와 결혼하면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과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강화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리경은 우유부단하고 자존심과 허영심이 강했던 사람이었다. 향락을 추구하고 자신이 메리보다 더 큰 권력을 쥐길 원했다. 그래서 단리는 메리에게 무례하게 굴며 스코틀랜드의 공동 통치권을 요구했다. 

 

그리고 메리의 뒤를 이를 후계자 제임스 6세가 탄생한다. 제임스가 태어나고 남편 단리가 살해된다. 남편이 살해되고 메리는 보스웰백작과 3번째 결혼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메리는 단리의 암살 의혹을 받게 되고 자신의 아들 제임스를 왕위에 올리려는 세력에게 호수 한가운데 있는 로크레벤성에 감금되고 이들 세력과 싸우던 보스웰은 싸움에 진 후 해적이 되어 도적질을 하다가 덴마크 군대에 잡혀 사망한다. 그리고 성에 갇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양위문서에 서명하게 된다. 1567년 제임스가 왕이 돼었으나 그의 나이 1세였다. 메리는 이 섬을 탈출해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가 있던 곳으로 망명을 요청했다. 

 

 

메리의 사망 

잉글랜드에 도착한 메리는 잉글랜드 섬에 감금되어 생활하게 된다. 메리는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18년 동안 지속된 감금 생활을 했고 아름답던 미모는 저물고 메리는 점점 빛을 잃어 갔다.  그 와중에 메리는 엘리자베스 1세 암살을 모의하다가 들키게 되고 1578년 2월 8일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녀는 3번의 도끼날에 찍혀 삶을 마감하게 된다. 메리가 처형당한지 16년 후 1603년 엘리자베스 1세도 숨을 거둔다.

 

유니언 잭 탄생 

엘리자베스 1세는 후계가 없었고 그녀의 뒤를 이은건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였다. 엘리자베스 1세가 제임스 6세에게 왕위를 넘겨주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역사 갈등은 마무리 되었다.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를 최초로 총괄해서 통치한 영국 국왕이고 바로 이때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의 유래가 시작되었다.  1603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치하면서 초기의 유니언 잭이 탄생했고 이후 1801년에 아일랜드 국가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유니언 잭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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