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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126-1

영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기틀을 마련한 인물인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처녀여왕이라 불렸던 엘리자베스 1세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이라고 불린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다. 출생부터 왕위 계승에 데한 정통성 , 권력, 미모까지 한평생 모든것을 비교당하며 엘리자베스 1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인물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이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한때는 프랑스의 왕비로 지내며 유럽 권력의 최정점에 올랐던 여왕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소유했던 인물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때문에 남성들을 홀리며 세번이나 결혼했다. 

 

메리여왕 사후 데스마스크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는 우리나라 엄친딸처럼 어릴때 부터 시, 음악, 스포츠까지 두루두루 잘하는 인물이었다. 메리 여왕은 최초의 여성 골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잉글랜드에서는 반대의 이미지로 복잡한 남자관계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1세와 비교당하는 메리여왕이었다. 

 

메리는 탄생과 동시에 스코틀랜드 왕위를 계승한 유일한 혈통이었다. 1542년 12월 8일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5세의 막내딸 메리 스튜어트가 태어난다. 메리는 2남 1녀의 막내였으나 두 오빠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메리는 스코틀랜드 왕위를 계승한 유일한 혈통이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대립 역사 

그러나 메리가 태어난 그 당시 1542년 상황은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잉글랜드 침략에 대항해 전쟁 중이었고 이때 당시 막강한 왕권을 휘둘렀던 헨리 8세였다. 그는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던 왕으로 이혼을 위해 가톨릭 대신 국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이 시기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스코틀랜드를 노렸는데 제임스 5세가 가톨릭 신자로써 반잉글랜드 정책을 펼치자 이를 명분으로 내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와 웨일스를 지배했고 스코틀랜드만 독립된 상태였다. 때문에 역대 잉글랜드 왕들은 끊임없이 스코틀랜드 점령에 나섰다. 그리고 이 시기 제임스 5세가 전쟁중 갑작스럽게 병사하면서 다음 왕위로 태어난지 겨우 6일 된 메리가 왕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에 헨리 8세가 스코틀랜드를 차지하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메리와 당시 4살이던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6세와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부담이었기 때문에 메리와 에드워드가 클때 결혼한다는 혼인조약인 그리니치 조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메리는 생후 9개월에 대관식을 치르고 여왕이 된다. 그러나 메리의 어머니는 이 조약을 격열히 반대했고 그리니치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에 분노한 헨리 8세는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한다. 1543년 12월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약 1만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잉글랜드의 공격으로 스코틀랜드가 망가지자 두 나라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프랑스와 동맹 

그러던 1547년 헨리 8세의 건강 악화로 사망하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헨리8세가 사망한 후에도 스코틀랜드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전쟁은 계속 되었고 메리의 어머니는 전쟁을 끝낼 방법으로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메리와 프랑스 왕의 아들 프랑수와 2세의 결혼을 전제로 군사적 원조를 요청한 것이다. 프랑스 왕은 이를  흔쾌히 수락한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오랫동안 적대관계였고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로 스코틀랜드와 손을 잡으면 잉글랜드를 견제하기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왕 앙리 2세는 1548년 6월 약 6천 명의 군사를 스코틀랜드로 보내고 한달 후 아들 프랑수아 2세와 혼인 조약을 맺는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계속 전쟁중이였기 때문에 메리의 안전을 위해 메리가 성인이 될때까지 프랑스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이렇게 메리는 고작 6살 나이에 모국인 스코틀랜드를 떠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여왕이 된 메리

프랑스에 생활하면서 메리는 프랑스의 화려한 궁정문화를 배웠고 매우 영특해서 5개국어에 능통했다. 자랄수록 메리의 미모는 빛을 발했다. 

 

모든 사람들이 극찬했던 메리의 미모

 

1558년 4월 15살의 나이에 프랑스와 2세와 메리는 결혼한다. 이로써 메리는 가톨릭의 수호국 프랑스 왕세자비이자 스코틀랜드 여왕이 된다. 메리의 결혼식으로 스코틀랜드를 쉽게 차지하려 했던 잉글랜드의 계획이 무산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메리가 결혼한지 6개월 후 1558년 11월 17일 잉글랜드에는 새로운 군주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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