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과 이순신
원균과 이순신은 정말 달랐다. 원균은 무인집안이고 이순신은 문신 집안으로 32세 나이에 무과 급제후 장군이 된것이다. 원균은 물불 가리지 않는 무대포 파이터 스타일이며 이순신은 꼼꼼하고 계획적인 전략가 스타일이었다. 식성 또한 원균은 한끼에 밥 한말, (밥 10공기), 생선 5마리, 닭 3마리, 꿩 4마리를 한꺼번에 먹는 100kg에 육박하는 거구였고 이순신은 소식을 했다.
칠천량 해전 출정
결국 원균은 이순신의 백의종군으로 생긴 빈 자리를 원균이 물려받게 되고 칠천량 해전으로 출정을 하게 된다 .칠천량은 지금의 거제이다.
선조의 명령으로 분산포의 왜군 본진을 공격하라는 명을 받고 원균은 의기양양하게 전선 약 160척을 이끌고 나간다. 당시 판옥선은 무거운 배로 노를 저어서 부산까지 가기에는 먼거리였다. 장거리 이동에 지쳐 배가 유실되기도 하고 물살에 휩쓸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전선을 잃기도 했다. 이에 다시 거제로 들어오게 된다.
칠천량 해전 패배
그러나 거기에 일본군이 매복해 있었고 갑작스러운 왜군의 공격에 공포스러웠던 조선 수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가게 되고 육지로 도망가던 원균도 왜군에 전사한다. 이 전쟁에서 조선 수군은 완전히 괴멸당하게 된다. 단 한번의 패배로 전선 약 160척, 괴멸 수준의 수많은 조선 수군이 전사하게 된다. 이순신이 약 5년동안 70척도 안 되는 배를 160척으로 늘렸지만 원균의 한번의 전투로 모든 것이 한번에 무너졌다.
이순신의 순군 재건
이에 선조는 백의종군 하던 이순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재임명했고 이때 병사 15명뿐이었다. 그것도 장교가 9명 병사 6명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미 식량, 배, 군사에 대한 조선 수군 재건을 계획하고 있었다. 칠천량 해전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이 자신이 지휘하고 있던 전선 12척을 이끌고 후퇴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순신에게 전선 12척이 돌아온 것이다. 군사도 과거 이순신을 따랐던 백성들의 자원으로 약 2달만에 수군 약 1500명을 확보한다. 이순신은 삼도수군 통제사로 재임명된 직후 식량이 있다고 알려진 곡성으로 제일먼저 달려갔다. 잠도 안자고 이틀 만에 진주에서 곡성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급자족 농사와 사냥을 통해 식량을 보충했고 소금생산을 통해 군량미를 교환했다. 당시 바다에 청어가 많아 흔했던 청어로 군량미와 교환했다.
그러나 선조는 이때 조선수군을 패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어명을 내리니 이순신은 선조에게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라는 내용의 장계를 썼다. 그리고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맞이하게 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속 이순신 명량해전,노량해전 (칠천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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