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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알탸회담 결과 177 -1

 

얄타회담 

얄타회담은 1945년 2월 4일 ~11일 제 2차 세계 대전 끝무렵에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 소련 스탈린 지도자들이 모여 독일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을 말한다. 

 

얄타회담

 

제 2차 세계 대전 끝에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 소련 스탈린 지도자들이 모여 독일의 패전과 그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회담을 말한다. 1939년 9월 1일 독재자 히틀러 독일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이후 약 7천만~ 8천 5백만명이 사망하는 희생을 치러야했고 6년간 이어진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무렵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 회담을 진행한다. 

 

페허가 된 바르샤바

 

얄타회담 결과 

이 회담에 전후 유럽의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중대 사안이 결정된다. 스탈린의 요구로 당시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던 나라들에 대한 소련의 지배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약 백만 명의 소련군이 동유럽에 주둔을 하게 된다. 이렇게 소련군이 동유럽을 장악하게 된다. 

 

동유럽 지배권 인정

 

그러나 미국은 동유럽 국가들이 스스로 정치적 결정권을 가질수 있도록 하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부 수립을 도와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스탈린의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이 스탈린의 요구를 들어 줬던 것은 소련이 전쟁에서 전체 인구의 15% 정도가 사망하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했고 당시 미국은 태평양 전쟁을 일본과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기 위해서 소련의 참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국제평화기구 UN의 설립을 위해서도 소련의 도움이 절실했다. 얄타 회담 결과에 따라 독일 영토와 수도인 베를린은 4개국이 분할통치하게 되었고 소련이 지배했던 국가들은 소련의 지배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소련이 직접 관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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