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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해산 과정: 한성감옥 사진 속 20대 청년 이승만 모습

한성감옥 죄수들은 누구? 

사진 속 이승만 대통령은 젊은 시절 독립협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1899년 고종폐위음모에 가담한 죄로 역모죄로 무기징역 선고 후 쇠사를로 결박까지 당하면 한성감옥에 들어갔다.  

 

한성감옥 죄수들/ 이승만 대통령이 가슴에 죄사슬을 메고 있는 이유는 무기 징역수였기 때문이다.

 

이상재 선생은 황성기독교 청년회, 국내에서 YMCA 운동을 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고 그의 아들이 이승인씨로 사진 위에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찍은 사진의 장소는 구한말에 세워진 서대문형무소 이전의 한성감옥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성감옥 역사

한성감옥은 조선에서 법무부 역할을 했던 기관으로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형조 관할의 전옥서 (감옥의 역할을 한 구치소같은 곳) 같은 곳으로 1894년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각종 기관을 근대적으로 개혁하면서 예전에 포도청이었던 곳을 경무청으로 바꾸고 경무청 산하의 감옥서를 설치한다. 한성 감옥은 종로구 서린동 41번지에 위치했던 곳으로 종로에 위치에 종로 감옥으로도 불렀다.  서대문형무소가 개소되면서 이후 한성감옥은 폐쇄된다. 

 

D 타워 맞은 편 전옥서 터
서대문 형무소

 

머그샷 (Mug Shot) 은  범죄자들의 용모를 찍는 용도로 19세기 말 ,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찍은 독립운동가의 머그샷 사진들은 누가 어떤 용도로 왜 찍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의 사진 대부분이 일제에 의해 머그샷 용도로 촬영된 것이다. 

 

만민공동회 개최 

1898년 3월 10일 제 1차 만민공동회가 개최되는데 약 1만 명이 운집했고 당시 이승만의 나이는 23세였다.  만민공동회는 우리역사 최초로 시민들이 모여서 집회를 연다. 이때부터 의견을 표현하려면 모여서 이야기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민중의 목소리가 모인 최초의 민주주의적 행동이었다. 만민공동회에서 시작되어 여러 민중 집회 3.1운동, 4.19, 6월 항쟁등까지 이런 문화가 계속 발전을 하게 된다.  만민공동회는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당시 만민공동회의 이슈는 러시아의 내정간섭이었다. 아관파천이후 러시아의 내정간섭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고 고종황제의 호위병을 러시아의 군관이 훈련, 한.러 은행 설립, 재정고문단을 파견 요청, 오늘날 부산 영동인 절영도에 석탄고 기지를 설치하기 위해 조차지역으로 설정하기 위해 땅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터무니 없는 요구를 쏟아냈던 러시아였다. 이에 분노하기 시작한 민중들이 더 이상의 외세 개입을 막기 위해 규탄에 나섰던 것이다. 

 

독립협회 (1896~1898) 

이 만민공동회의 중심에 독립협회가 있었다. 멸시받던 백정 출신도 목소리를 낸 단체이자 대중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 독립협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민권, 민중의 정치 참여, 내정개혁 등을 주장하고 활동했고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민중 계몽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던 단체이다. 

 

만민공동회 해산 과정 

만민공동회에서 많은 인구가 모이자 고종 황제는 대중의 의견을 수용한다.  이에 독립협회는 의회 설립을 주장했고 1898년 11월 4일 의회설립법을 공포하지만 고종황제가 그날 밤 마음을 바꾼다. 반나절 사이에 마음이 바뀐 고종황제는 개혁정부 및 독립협회를 해산시킨다. 그리고 독립협회 간부들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독립협회 간부 2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에 몸을 피한 세명의 간부는 몸을 피하고 17명이 한성감옥에 투옥된다. 

 

이에 윤치호가 젊은 리더들 양홍묵, 이승만등을 불러  다시 시위를 조직하고 구속자 석방을 위한 42일간 한국역사에 유일무이한 기록적인 연장시위를 했다. 하지만 고종은 만민공동회를 해산 시키기 위해 방법을 찾던 중 대한제국 외교관들에게 질문을 하게 되고 대부분 경찰력을 동원하라고 조언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라고 했고 이에 고종은 그들의 말을 수용해 11월 25일에 11가지 죄목을 붙여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를 불법화 후 해산 명령을 내리고 430여 명의 지도자를 체포해서 구금하게 된다.  그래서 위 사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이때 구금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