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김정일군정대학이라고 있다. 김정일 군정대학은 정치 일꾼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주로 대남 공작원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북한에서 대남 공작기관으로 가장 큰 곳은 북한군 정찰총국이다. 김정일군정대학교를 졸업 후 북한군 정찰총국 장교로 선임되고 작전부 등 주요 대남 전투원으로 투입된다. 김정일때만 하더라도 이 학교를 노출한 적이 없었으나 김정은은 노골적으로 언론에 드러내고 있다.
국군첩보부대 HID 란?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철저하게 비밀에 감춰진 부대 국군첩보부대 HID 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진에 침투하며 기록되지 않을 기밀임무를 맡는 HID 이다. 첩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극한까지 훈련받는 부대이다.
국군첩보부대 정보사 산하에서 특수작전만 수행하는 특임대대가 HID 이다. 영화 '아저씨', 영화 '실미도' <강철부대3> 등으로 민간인에게 지금은 익숙해진 HID 이다.
HID 탄생 배경
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때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무장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1.21 사태의 보복 응징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가 HID 이다.
hid 활동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 2022년
대한민국 한복판 서울에서 조찬 강연 준비 중이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북한으로부터 습격당한 일이 있었다. 미국 대사가 분쟁지역이 아닌 곳에서 피습당한 첫 번째 사건으로 한국과 미군 양국은 모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다. 당시 반미 성향이 강한 테러범에게 약 25CM의 흉기로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게 되었다. 이때 모두가 혼란에 빠진 순간 발 빠르게 범인을 제압한 사람이 HID 출신이었다.
이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길이 11CM , 깊이 3CM 의 상처가 나서 80바늘을 꿰매었다. 범인은 리퍼트 대사의 목을 겨눴는데 범인을 발빠르게 재압해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미얀마 아웅산 테러
또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때 김일성 암살 작전 중심에 있었던 부대가 육군첩보부대 HID 였다. 당시 작전 임무는 평양 주석궁 폭파와 평양 중앙방송 송신탑을 폭파하는 임무였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 작전을 전면 철수한다. 전두환 정권은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했던 터라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지가 필요했으나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를 반대했던 것이다. 그렇게 HID 요원들의 북한 주석궁 폭파 작전은 사실상 취소가 되었다.
모가디슈 속 활약
이후에 hid 요원들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모가디슈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도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를 시작한 시아드 바레가 김일성과 친했는데 바레의 독재 정권을 반정부 세력이 공격하면서 쿠데타로 인해 1994년 소말리아 내전이 발생한다. 당시 유엔이 각국의 군인들을 모아 평화유지군부대(pko)를 조직했고 한국은 250여 명으로 구성된 상록수 부대를 창설한다. 이들은 치안유지, 시설복구, 행정 지도 지원의 임무였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hid 요원이 파견되었다. 이때 북한 대사관의 금고를 탈취하는 임무도 했다.
사실 휴전선 부근 HID 라는 이름 아래 사망한 요원이 7천명 이상이다. 유해도 찾이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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