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경북 안동 무엇이 특별한가?

반응형

한국의 정신문화 수도라고 불리는 이곳은 정말 특별한 도시인데요. 안동은 면적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로, 무려 1,519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을 자랑합니다. 서울의 2.5배 크기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니 한번 잘 살펴볼까요?

 

한국의 정신문화 수도라 부르는 이유 

 

 

서울에서 200KM 떨어짐 

인구 16만명 

 

 

안동의 지리적 위치와 이점 

1. 천혜의 요새인 분지 지형

안동은 한국의 남동부 경상북도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태백산백, 북동쪽으로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여있는 분지- 외부의 침입이 어렵고 이러한 지리적 안정성때문에 사대부들이 모여 살았다. 때문에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온적도 있었다. 

 

2. 낙동강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낙동강이 도시를 관통해 흐르고 있어 비옥한 토지로 농사 유리 , 안정적 농업 생산량으로 부유한 양반이 오랜 기간 자급자족하며 머물수 있던 수백년 동안 전통을 지켜올 수 있는 기반 (하회마을 등), 낙동강을 따라 내륙 운송과 상업의 중심지

 

이러한 지리적 중심성 덕분에 경상북도청이 안동으로 이전했다.

요즘은 남북을 잇는 중앙고속도로, 서->동을 잇는 당진영덕고속도로 , 서울과 안동간 KTS 개통

 

‘안동’이라는 이름의 의미

기원전 1년경 진한 사람들에 의해 고창으로 건설된 안동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배를 받았다. 930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왔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안동'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안동이라는 이름에는 ‘평화의 동쪽’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여기서 "안(安)"은 평화를, "동(東)"은 동쪽을 의미하죠. 

 

 

안동 태사묘 : 안동 기원

안동은 안동 김씨, 장씨, 권씨와 같은 영향력 있는 호족의 본거지였다. **안동을 구한 세 명의 영웅, 삼태사(三太師 - 석 삼, 클 태, 스승 사)이다** 안동 김씨(安東 金氏), 안동 권씨(安東 權氏), 안

jangane.tistory.com

 

 

안동에 양반이 많은 이유 (집성촌을 형성한 이유) 

안동이 유난히 양반 가문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지리적 위치 때문이에요. 안동은 대한민국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부 중앙에 있는 도시다.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며, 태백산맥(太白山脈)과 소백산맥(小白山脈)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 그릇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땅)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처럼 나라가 망할 뻔한 큰 전쟁이 났을 때도, 적군들은 이동하기 편한 큰길로만 다녔기 때문에 깊은 산속인 안동은 무사히 피해 갈 수 있었다. 덕분에 가문의 재산과 오래된 집, 족보가 불타지 않고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또한 산이 높아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안동의 힘 있는 양반 가문들은 안동 안에서만 서로 결혼을 했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풍산 류씨 같은 최고 명문가들이 자기들끼리만 혼인을 맺었다. 그 결과 재산과 땅, 정치적인 힘이 안동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고, 집성촌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 유역은 농업 생산력을 높여 안정적 생계 기반을 마련해 생계 걱정없이 교육과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 사회 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원래 조선 초기에는 아들과 딸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가졌고, 남편이 아내의 동네로 가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성리학(性理學: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사회의 중심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첫째 아들인 장자(長子)가 가문의 재산을 대부분 물려받고 조상을 모시는 제사(祭祀)를 책임지게 되었다. 또한, 결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대대로 아들들이 한 지역에 머물며 땅과 재산을 지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아버지 쪽의 혈연을 중심으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거대한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이다.

풍산 류씨 가문이 모여 사는 하회마을(河回村)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친척들끼리 모여 살면서 양반의 예절과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가문의 힘을 수백 년 동안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교육의 중심지였다. 조선 시대(朝鮮 時代)에 안동은 학문인 성리학(性理學: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도시의 정치적 소란을 떠나 자연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이에 서울같은 정치 중심지에서 떨어진 조용한 지방을 선호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환경이기 때문에 유학자들이 학문 연구하기 좋은 장소로 여겼다. 또한 한국의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인 이황(李滉)이 태어난 곳이며, 도산서원(陶山書院: 조선 시대의 사립 학교)이 있는 곳이다. 양반이라는 신분을 계속 유지하려면 국가 시험인 과거에 합격해야 했는데, 안동은 교육 열기가 높아서 훌륭한 학자와 관리를 많이 배출했다.

 

 

꼭 가봐야 할 명소

안동에는 정말 멋진 명소들이 많습니다. 먼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같은 유서 깊은 서원이 있죠. 퇴계 이황 선생이 세운 도산서원은 한국 유교의 중심지로, 이곳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직접 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하회마을에서는 조선 시대 양반 가문의 생활을 잘 보존해 놓았답니다. 지금도 전통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예요.

독립운동의 중심, 안동

안동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도 했어요. 이곳에서만 무려 천 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답니다. 그래서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리기도 해요. 이곳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용기 있게 싸운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답니다.

안동의 유명한 음식

이제 맛있는 안동의 음식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안동 찜닭입니다. 이 찜닭이 왜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안동의 안동’이라 불리던 안쪽 마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안동에 있던 ‘닭 골목’에서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찜닭을 만들어준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구의 유명한 치킨과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또 하나는 안동 간고등어입니다. 안동은 내륙에 위치해 있어서 예전에는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게 지금의 간고등어로 발전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안동 소주도 꼭 맛보셔야죠. 안동 소주는 한국 전통 증류주로, 깊고 강한 맛이 특징이에요.

자, 이렇게 안동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 도시가 단순한 곳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정신이 담긴 곳이라는 것을 느끼셨죠? 그럼 이제 안동의 멋진 명소들을 하나하나 직접 보러 가볼까요? 저를 따라오세요!

 

 

경상북도 안동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시로 면적은 약 1,519 평방킬로미터이다.  

"안동"은 '평화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안"은 평화, "동"은 동쪽을 의미한다.  원래 안동은 고창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후백제와 고려의 전투가 안동일대에서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왕건이 고창의 이름을 동쪽을 평안하게 했다는 뜻의 안동으로 바꾸면서 오늘날 안동으로 불리게 됐다.  

 

안동에 양반이 많은 이유

지리적인 위치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긴 낙동강 유역에 위치해 농업이 발달하기 좋은 위치로 좋은 땅이 있다는 것은 부를 축척하기 좋은 조건이다. 또한 안동은 유교문화가 발달했는데 유교는 가족 간의 유대, 조상 숭배, 그리고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황과 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유학자가 있던 곳이 안동이다. 조선시대는 양반이라는 신분이 세습되었기 때문에 토지, 재산등을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이런 조상의 토지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안동에는 이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고 현재까지도 후손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물려주며 가족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관광지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 만휴정, 월령교, 

 

오늘날 안동의 집성촌은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회마을에 가면 조선시대 양반 가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볼수 있는 장소를 잘 보존해놓고 있다. 또한 안동 주민들은 이런 전통을 지키는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각 마을마다 가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일제 시대 다른 도시들에 비해 항일 운동과 독립운동이 잦았고 무려 1000여 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 운동가의 성지로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라는 타이틀이 있다. 

 

 

 

 

 

음식

안동은 음식도 유명한 것이 많은데 안동 찜닭, 안동 간고등어 , 안동 소주 , 안동 식헤, 헛제사밥 등이 있다. 또한 전국 3대 제과점 맘모스 제과가 안동에 있다. 

 

간고등어 유명한 이유

Andong is an inland area located almost at the center of Korea, far from the sea. Since ancient times, Andong has been an active center for trade. However, because it took time to transport goods, people started salting seafood to preserve it for as long as possible. This led to the creation of gan godeungeo, or salted mackerel, which has become a local specialty of Andong.

 

찜닭 유명한 이유 

There are three theories about why Andong Jjimdak (Andong Steamed Chicken) is famous:

  1. The "Inner Village" Theory: In addition to the name “Andong,” there were two distinct areas called “Inner Village” and “Outer Village.” The Inner Village, which was wealthier, often made jjimdak with a variety of ingredients. People from the Outer Village referred to it as the “Inner Village Jjimdak,” which eventually became known as Andong Jjimdak.
  2. The Chicken Alley Theory: Andong had a “chicken alley” where vendors prepared steamed chicken with various ingredients according to customers’ requests. This customized dish has continued to evolve into the jjimdak we know today.
  3. The Fried Chicken Rival Theory: Another theory suggests that Andong Jjimdak was created to compete with fried chicken, which originated in Daegu, a nearby city. Andong developed its own chicken dish as a rival to the popular fried chicken in Korea.

 

 

안동 간고등어 안동찜닭이 유명한 이유는? 헛제삿밥이란?

[선을 넘는 녀석들 20회 중] 이번회에 선녀들은 안동하회마을 내에 '터줏대감'이라는 식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안동의 3종세트 안동 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 헛제사밥을 즐긴다. 안동 헛제삿

jangan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