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불교의 나라로 경주에는 엄청 많은 절이 있고 그 절 터에서 나온 유물들을 신라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1층에 디지털 영상관이 있다.

디지털 영상관은 자율관람이 가능하고 1편: 성덕대왕 신종 (11분), 2편은 신라인이 표현한 그 시대의 얼굴들 (6분)짜리를 상영하고 있다.


불교조각실
불법가 신라를 수호하는 신장, 신라 사람들과 삶을 함께한 부처와 보살 아름답고 청정한 세계의 백률사 약사여래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이다.
이차돈 순교비
입구에 보면 통일신라 시기의 이차돈 순교비가 있다. 가장 입구에 배치한 이유는 신라는 법흥왕 때 14년 527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통해서 불교가 공인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순교(종교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는 뜻이다. 이 육각형(여섯 개의 면을 가진 모양) 돌기둥은 원래 백률사라는 절에 세워져 있었지만, 부서지기 쉬운 조각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신라 왕실에서는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나 신라 귀족들은 자신들이 원래 믿고 있는 토착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귀족들의 반대가 심하자 이차돈이라는 신하가 법흥왕한테 자신의 머리를 베라고 했다.


이차돈의 목을 쳤을때 흰 피가 솟구쳐 오르는 장면과 꽃비가 내리고 옆에 머리는 떨어져있고 땅이 흔들리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불교 공인을 위해 이차돈이라는 사람이 희생한 것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비석을 세운 것이다. 미술관 불교 조각실에서 매시 정각 20분, 40분 마다 이차돈 순교의 과정을 표현한 디지털 맵핑 영상 이차돈 -꽃비 내리는 길을 볼 수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모든 질병을 고쳐준다는 역사여래를 형상화한 불상으로 불국사의 아미타여래좌상, 비로자나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 3대 금동 불상으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금동입상 중 최대 크기예요. 백률사(이차돈 순교와 관련된 소금강산 사찰)에서 1930년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손이 없는 이유
“두 손은 없어졌으나(결실),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시무외인), 왼손에는 약그릇(약호)이나 구슬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원래 구조: 손은 몸통과 별도로 만들어 끼운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가장 약하고 쉽게 떨어질 수 있는 부분)
- 언제 없어졌나? 일제강점기 이전 옛 사진에는 손이 온전하게 남아 있고, 왼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분명히 찍혀 있어요. → 1930년 박물관으로 옮긴 후(또는 그 직전) 손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 정확한 이유는? 공식 기록에는 “없어졌다”만 나와 있고, 언제·누가·어떻게 절단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 추정되는 이유:
- 후대(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에 금도금(황금박)을 벗겨내면서 손까지 함께 부서지거나 잘라낸 경우
- 불상 손은 원래 가장 섬세하고 돌출된 부분이라 보관·이동 중 자연 파손되기 쉬움
- 일부 민간 전승에서는 “금 노리고 훼손” 이야기가 있지만, 박물관은 “손 결실”로만 중립적으로 설명합니다.
지금 보면 손목이 뚝 잘린 듯한 빈 공간이 보이지만, 그 빈틈으로 원래의 위엄 있는 자세가 더 생생하게 느껴져요!


석굴암 입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단연 '금강역사상'이다. 이들은 아주 쉽게 말해 가장 안쪽에 계신 부처님을 나쁜 귀신들로부터 지키는 강력하고 무서운 보디가드이다.
이 두 명의 보디가드는 부처님이 계신 둥근 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양쪽에 무서운 얼굴로 서 있다. 윗옷을 벗고 엄청난 근육을 뽐내며 손에는 '금강저'라는 벼락을 뜻하는 단단한 무기를 들고 있다. 당장이라도 적을 때려눕힐 듯한 아주 역동적인 자세이다.
자세히 보면 두 조각상의 입 모양이 서로 다르다. 오른쪽 조각상은 입을 크게 벌려 '아' 소리를 내고, 왼쪽 조각상은 입을 굳게 다물고 '훔' 소리를 낸다. 불교에서 '아'는 우주가 시작되는 첫 소리를 뜻하고 '훔'은 우주가 끝나는 마지막 소리를 뜻한다. 즉, 이 두 명의 보디가드는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부처님의 거룩한 공간을 완벽하게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가운데 부처님 한분, 보살 두 분이 있는 이 보물은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다.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박물관과 같이 불상과 탑으로 가득차 있다. 신라 사람들은 경주 남산을 부처님이 머무는 신성한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륵불은 미래의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이다. 힘든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미륵부처님을 많이 찾았다.
2층
황룡사 치미에는 신라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치미는 목조 건축에서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붙였던 기와 장식을 말한다. 건물의 위엄을 강조하거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로 만들었다 .


치미가 너무 커서 한 번에 기와를 다 굽지 못하고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이어서 붙였다. 이를 통해 황룡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알수 있다.
불교사원실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 터를 비롯한 분황사 감은사 터, 사천왕사 터 등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기와 전돌등을 소개하고 있는 전시실이다.

불교가 신라에서 공인된 이후 처음에는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퍼졌다. 이후에 일반 백성에게도 확산이 된다 . 그래서 신라시대는 별처럼 많은 절과 기러기처럼 늘어선 탑들이 줄지었다 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 신라 서라벌은 절과 탑이 엄청 많았다. 신라 사람들은 신라가 불국토 부처님이 계신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절과 탑을 세운 것이다. 경주시내 사원은 현재까지 300여곳으로 알려졌다. 문헌에 나와있는 곳만 100여곳이 넘고 탑과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곳이 50여곳, 발굴하여 위치를 알수 있는곳도 약 30곳이다.


황룡사
수많은 탑과 절중에서 원탑이 있는데 바로 황룡사이다. 신라 진흥왕 14년 553년에 짓기 시작해 무려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되었다. 이어서 선덕여왕 14년 645년에 9층 목탑이 완성됐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 시대를 대표하는 호국 사찰이기도 하다.

황룡사는 진흥왕이 새로운 궁궐을 짓고 있었는데 새로운 용이 나타나자 궁궐대신 절로 고쳐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크기와 사찰의 위상으로 당시 황룡사는 신라 최대규모 최고 일등 사찰이었다. 9층목탑은 진흥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 때 부처의 힘으로 주변 아홉 나라의 위협을 막고자 세운 탑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쟁으로 불에 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그곳에서 사리장엄구, 기와, 불상 등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감은사 터 사리장엄구
부처님이나 스님이 돌아가시면 화장을 하는데 화장한 뒤에 나오는 구슬 같은게 있는데 그것을 사리라고 부른다.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리를 담는 병, 상자이다.

감은사지 이야기 - 사리함에 무엇이?
경주에 가면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릉이 바다 속에 있다. 문무왕이 죽으면서 왜구의 침략을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겠으니 대왕암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문무왕 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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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녹유신장상벽전
사천왕사 터에서 나온 목탑의 아래쪽 기단 벽면을 장식했던 전돌(납작한 벽돌 모양의 건축 장식)이다. 불교의 수호신인 신장이 악귀를 깔고 앉은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천왕사에는 동탑과 서탑 두 개의 탑이 있고 하나의 탑에만 24개의 신장상이 새긴 벽전이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절로 신장은 불교의 수호신이다.


송화산 석조반가사유상
이 조각상은 경주 송화산 금산재에서 출토된 얼굴과 팔 부분이 떨어져 나가있는 석조반가사유상으로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턱을 괸 채 고요히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고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깊이 사색하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유명해지는 계기가 있었다. BTS RM이 이 조각상을 찍어 인스타에 올려 전 세계인들이 주목했던 조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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