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게르니카 폭격 85- 3 ▶이전글 스페인 내전 이야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개입 이유는?) 83-2 [이전글] 스페인 내전 이전 상황 보기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스페인 군부의 핵심적인 인물 반란 우파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등장한다. 24 살의 젊은 myvoice.wissue.net 스페인 내전 중 반란 진영 히틀러, 무솔리니의 개입과 공화 진영 소련 스탈린의 원조로 두 진영은 전력을 키워 나가던 1936년 10월 반란 진영의 프랑코 장군은 군대와 전투기를 이끌고 수도 마드리드에 무차별 공중 폭격을 가한다. 수도 마드리드 점령 실패 평화로웠던 도시는 일반인 거주 지역은 물론 각종 시설이 파괴되고 어린이 노약자 상관없이 무차별로 폭격했고 한순간에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더보기 피카소 게르니카 작품 해설 및 역사적 배경 [이전글] 게르니카 폭격 이야기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쪽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게르니카를 그렸을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1937년 56 세였다. 한달 만에 완성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폭 8m 높이 3.5m의 거대한 작품이다. 역사적 배경 스페인은 전성기를 지나 급격히 쇠락하면서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서 패배했고 뒤늦은 산업화와 경제 대공황의 위기등으로 힘들었다. 공화국에서 왕정복고 등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겨쳤고 1931년 좌파연합의 선거 승리로 제2공화국이 선포된다. 1931~1936년까지 학살,암살,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40여 차례의 쿠데타로 극심한 혼란과 분열이 지속되다가 결국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다. 게르니카는 바스크 인근에 위치한 도시로 스페인의 대표 .. 더보기 스페인 내전 이야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개입 이유는?) 83-2 [이전글] 스페인 내전 이전 상황 보기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스페인 군부의 핵심적인 인물 반란 우파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등장한다. 24 살의 젊은 나이에 육군 최연소 대위가 되고 식민지였던 모로코 북부 지역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데 큰 전공을 세우며 그러다가 쿠데타가 일어나 우파, 즉 다른 지역의 핵심인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잔인하고 비정한 성격으로 스페인 내전을 비극으로 이끄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반란 지역의 목표는 스페인 군대를 동원해서 빠르게 주요 도시를 장악하고 정권을 탈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성공시키려면 반란 지역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1번째 과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모로코에 있던 자신의 주력 부대를 반란을 위해 스페인 본.. 더보기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예술인들 (헤밍웨이, 조지 오웰, 생택쥐페리)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전 세계 53개국에서 공화 진영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약 3만 2천에서 4천여 명의 의용군인 국제여단이 모였다. 이때 공화진영을 돕기 위해 스페인으로 각국의 예술인들이 찾아왔다.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의 종군기자로 입국 후 공화진영 선전 기사를 작성하였다. 또한 미국인들에게 스페인에서 일어난 참상을 더욱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직접 전국을 다니며 전투를 체험하고 시나리오와 내레이션까지 소화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고 이렇게 만든 영화를 백악관으로 가지고 와서 루스벨트 대통령에 보여주며 미국이 공화 진영을 도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즉 철저히 공화정 편에서 전 세계에 .. 더보기 뭉크 < 절규 > 의미는? (4가지 버전의 절규 ) 노르웨이 국민화가로 알려진 에드바르 뭉크의 는 북유럽 최대 규모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걸려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뭉크는 밤의 방랑자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던 작가로 뭉크의 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던 작품이다. 뭉크의 뭉크의 는 회화로 4개의 버전이 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소더비 경매에 나온 파스텔 버전의 는 1억 2천만 달러로 단 15분만에 낙찰이 되었고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58억원의 고가로 낙찰되었다. 속 인물은 뭉크 자신을 표현했다. 오슬로 에케베르크 언덕에 갔을 때를 회상하며 느꼈던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뒷쪽에 남성 두명이 보이고 뒤쪽 배경은 피오르 협곡을 표현, 검붉은 노을을 표현한 것이다. 원래 제목은 고 자신이 서있던 곳에 공포스러운 소리에 괴로워하는 상황.. 더보기 단테 신곡 줄거리 속 9개의 지옥은 무엇? [이전글] 단테 신곡 의미단테 신곡 줄거리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는다. 숲에서 나타난 괴수 세마리를 보고 굉장히 놀란다. 여기서 세 마리 동물은 인간이 죄를 짓게 하는 3가지 악의 본성을 의미하는데 늑대는 탐욕, 사자는 교만, 표범은 정욕을 의미한다. 이때 베르길리우스(단테가 가장 존경하던 시인) 가 나타난다. 그와 함께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 지옥문 앞어두운 숲 지옥문 앞에 도착한다. 단테가 생각한 신곡 속 지옥은 춥고, 멈춰져 있고 어두운 곳으로 죽음의 희망조차 없는 곳으로 9옥까지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각한 죄를 단계별로 묘사하고 있다. ☆로뎅의 보기↓ 속 생각하는 사람" data-og-description="현대 조각의 아버지 거장 로댕이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서 만든 최고의 .. 더보기 로뎅의 < 지옥의 문 > 속 생각하는 사람 현대 조각의 아버지 거장 로댕이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서 만든 최고의 걸작이 바로 이다. 지옥의 문은 7M정도 되는 거대한 문으로 1880년 프랑스 정부가 실제로 장식미술관의 중앙문 정문으로 만들려고 제작을 의뢰했다. 로댕은 피렌체 산 조반니 세례당의 에 감명받아 지옥을 주제로 제작하게 되었다. 지옥의 문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이 되었으나 로댕이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만들었으나 완성을 지키지 못한다. 1926년 로댕 사후 10주년에 로뎅의 작품을 모아서 지금의 청동 을 만들었다. 지옥의 문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200여명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생각하는 사람200여명의 인물은 독립상으로 만들어졌고 그 작품들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문 바로 위에 이다. 로댕의 대표작으로 여기는 작품이 인데 지.. 더보기 일제강점기 속 최초 크리스마스 씰 (Christmas seal) -셔우드 홀 / 엘리자베스 키스 우리나라 최초 크리스마스 씰 우리나라의 최초의 크리마스 씰을 만든 사람은 셔우드 홀로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로제타 홀의 아들이다. 셔우드 홀은 이모처럼 따르던 박에스터(한국 최초 여의사)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도 부모님처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셔우도 홀이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사람이다. 셔우드 홀은 의사가 되기 위해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1928년 황해도 해주에 돌아와 한국 최초 결핵 전문 요양 병원인 해주 구세요양원을 설립한다. 병원 운영을 위해 셔우드홀은 9개의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게 된다. 그 중에 1932년 첫 번째로 발행됐던 남대문 씰이었다. 그러나 처음 크리스마스 씰의 도안 이것이 아니였다. 이순신의 거북선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순신 거북.. 더보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유네스코 등재되다.( 크리스마스 휴전 역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탄생 배경 오스트리아의 신부였던 요세프 모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알프스의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들이기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이 전장 한가운데 대치하던 상황이었다. 1914년 12월 24일은 전쟁 후 첫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참호 밖으로 울려 퍼진 익숙한 선율, 독일군 진영에서 시작된 캐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반대편 영국군 진영에서 백파이프 연주로 화답을 했고 두 진영들은 서서히 경계를 풀고 노래가 끝나자 영구군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1914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독일군들은 펫말을 들고 나와 우리는 당신을 쏘지 않겠다고 했고 영국군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전쟁하지 말자고 평화협정.. 더보기 메디치 가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 그리고 몰락까지 (이전내용) 로렌초 데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예술가 과학자 누구? 70-3 메디치 가문이 있던 시기에 교회의 가장 큰 죄목은 탐욕이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으는 일, 요구하는 일은 죄악으로 치부했었다. 이에 은행업자, 이자 대부업자들에게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교회에 기부하라고 했고 메디치 가문도 자신이 지은 죄를 씻고 구원을 얻기 위해 큰 결정을 한다. 두오모 성당 돔 후원 바로 피렌체의 상징이자 랜드마크가 된 두오모 성당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당시 지붕이 없었던 두오모 성당의 지붕을 만드는데 엄청난 후원을 했다. 돔의 지름은 약 45m로 무게 약 2.5 톤을 견뎌내야하는 기술의 부재로 미완으로 남아있던 성당이었다. 그러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고 돔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수.. 더보기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