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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

러시아 우크라이나 기원 /페레야슬라프 조약 (벌거벗은 세계사 44회 )

우크라이나 유럽의 빵바구니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세계 5대 곡물 수출국에 속하는 우크라이나는 체르노좀, 초르노젬이라 불리는 '검은색 흙'이라는 뜻으로 기름지고 유기물 함량이 높아서 농사짓기에 좋은 토양에 풍부한 지하자원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강대국들이 탐냈던 우크라이나 땅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지정학적 위치를 뽑을 수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유럽, 동쪽은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동과 만나는 곳으로 지리적 요충지에 속한다.

 

 

또한 러시아 국내 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것이 에너지 분야인데 유럽으로 수출되는 천연가스 상당량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판매되는데 주요 가스관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를 지나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면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원

 

두 나라의 기원이 되는 나라는 9세기 경의 키이우 루스이다. 동슬라브인이 세운 최초의 국가로 루스의 어원은 노를 젓는 사람, 항해자라는 뜻이 있다.  중세 유럽처럼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나라를 통치했고 비옥한 토지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던 나라로 동로마 제국의 선진 문물과 동방정교(동로마 제국의 국교로 카톨릭함께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 중 하나) 를 받아들어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키이우 루스 영역은 오늘날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세나라의 기원이 된다.

 

키이루 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기원국가

몽골 속령됨
하지만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13세기에 몽골제국의 전성기로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재위 1227~1255)가 12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가서 키이우 루스를 정복했다. 이 과정에서 키이우 루스는 몰락했고 오늘날 모스크바 지역은 몽골의 속령이 되었다.

 


몽골 제국의 지배 아래 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모스크바 공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 성장하여 러시아가 된 것이다.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아 성장하면서 15세기 1480년 우그라 강 전투에서 몽골군에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약 240년 동안의 몽골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루스 차르국(=러시아)

당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14세기에는 동유럽의 리투아니아가 침입했었고 16세기에는 폴란드에 리투아니와 함께 강제 병합되었다. 폴란드가 지배할때는 압박을 피해 남쪽으로 계속 밀려나고 있던 상황이었고 코사크가 폴란드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코사크

그러나 코사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상황이어서 모스크바 공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모스크바 공국은 루스 차르국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루스 차르국(=러시아)과 연합해서 폴란드 가톨릭 국가에 맞서 싸우자는 조약을 맺는다. 

 

페레야슬라프 조약(1654)

루스 차르국(러시아)과 코사크(우크라이나)가 맺은 조약으로 이 조약을 맺은 후 우크라이나 땅은 두 쪽으로 갈라진다.  당시 러시아는 폴란드와 싸우겠다고 했으나 폴란드와의 전쟁을 멈춰버린다. 러시아가 약속을 깨고 폴란드와 평화협상을 맺었고 그러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땅을 폴란드와 나눠 가진다.  

 

 


러시아는 군사 원조를 하고 코사크는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을 놓고 해석의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는 이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합병이 되었다고 해석하고 우크라이나는 단기적인 군사 동맹이자 단순한 보호 조약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석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1667년 러시아와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땅 분할지도


이 조약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해석대로 일부가 합병이 되었고 당시 우크라이나는 강국이었던 러시아의 뜻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이후에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18세기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남쪽 지역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를 근거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는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동서로 갈라진 우크라이나

동서로 갈라진 우크라이나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은 강한 친서방 성향과 함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면서 러시아를 사용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은 친러시아 성향과 함께 러시아어를 약 80%를 사용하고 있다.

 

 

서부에는 천주교와 동방 카톨릭이 발달되었고 동부에는 정교회가 발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종교도 나뉜 우크라이나이다. 이때를 기준으로 현재까지 두 문화권으로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이다. 

러시아는 더 많은 우크라이나 땅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게 된다. 폴란드가 국력이 약해지면서 1772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3나라가 조약을 맺고 폴란드 땅을 분할해 나눠가지면서 러시아는 폴란드가 가지고 있던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에 1793년 1795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2번에 걸쳐 폴란드의 영토를 나눠 가지면서 영토가 더욱 확장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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