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무역 지배와 영국 항해조례의 탄생: 해상 패권의 전환점
17세기 초, 네덜란드 공화국은 해상 무역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들은 단순히 물류만 잘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가 세계 해상 무역을 지배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공적인 항해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발달된 조선 기술 때문이었다. 17 세기에 네덜란드에는 작은 선박을 세지 않고 6000 대 이상의 상선을 가졌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1602년 설립)**가 아시아 식민지 무역을 장악했다.
-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1602년 개장)**는 세계 최초의 금융시장으로 자본 조달에 성공했다.
- 중계무역으로 다른 나라의 물자를 사들여와 그대로 제 3국에 수출하는 무역
- **플류트선 (fluyt ship)**이라는 저비용 고효율 화물선이 해상 경쟁력을 높였다.
캐러비안의 해적들에 등장하는 플류트선 이야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면 화려한 해적선, 특히 ‘블랙펄(Black Pearl)’이나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해적보다 훨씬 강력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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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암스테르담은 ‘세계의 창고’가 되었다. 아시아 향신료뿐 아니라 영국의 석탄, 양모, 주석도 네덜란드를 경유해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1640년대가 되자, 영국은 해운업이 침체되고 무역 점유율이 급감하는 위기에 놓였다.
이에 대응해 영국 의회는 1651년 10월 9일, 최초의 항해조례(Navigation Act)를 통과시킨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영국 또는 영국 식민지 선박만이 영국 무역에 참여할 수 있다.
- 외국 상품은 생산국 선박을 통해서만 수입 가능하다.
- 영국 식민지와의 무역에서 외국 선박 금지
- 선원 75% 이상이 영국인이어야 한다.
이는 네덜란드를 겨냥한 보호무역 조치였다. 일반적인 무역 규제가 아닌, 전략적 해상 경제 공격이었다.
항해조례의 영향은 크다:
- 영국 조선업과 해운업 활성화
- 경제적 민족주의와 무역 주권 개념 정립
-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1652~1654)**의 직접적 원인이 됨
하지만 이 조례는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 조례는 계속 개정된다:
- 1660년 조례: 사탕, 담배 등 특정 상품은 영국에만 수출 가능
- 1663년 조례: 모든 식민지 수입품은 반드시 영국을 경유해야 함
- 1673년 조례: 보증 시스템 도입, 무역 규정 준수 강화
이러한 체계는 1849년까지 존속하며 영국 제국 무역질서의 근간이 된다.
트럼프 관세 정책 또한
미국 선박 우선 구매, 미국인 우선 고용, 미국 물건 사용 유도 (중국산 고관세로 ) 미국 중심의 공급망, 생산기지 복귀 등 미국 우선 전략이 핵심으로 영국의 항해조례와 비슷하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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