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원
청와대 소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걸었던 길이 있고 사망이 뚫려있어 청와대 본관, 관저등, 모든 건물로 통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야생화로 가득하다.
청와대 구본관 터
고려때 부터 청와대 자리는 명당으로 불렀다. 1990년 청와대를 새로 만들 때 청와대 자리 길지를 알리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천하제일복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연릉오거라는 사람이 새긴 글로 중국 남송 시대 연릉 지역에 살았던 명필 오거의 글자를 집자해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 글씨를 새긴 시기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위해 원납전을 백성들에게 받아야 했는데 원성이 커지자 왕권강화, 민생 안정을 위해 천하제일 명당에 궁궐을 중건해야 한다는 명분이 필요해서 민심을 달래기 위한 흥선대원군의 상징 조작이 아닐까 추측한다.
원래 청와대 본관은 경무대 터에 있었다. 일제 식민지때 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가 청와대 터에 관사를 지었다.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조선 총독 관저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했고 윤보선 대통령때 청와대로 공식 개명했고 노태우 대통령때 청와대 본관과 관저를 신축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때 구 관저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사라진다.
데라우치 조선 총독이 이 불상을 맘에 들어해서 그에게 상납되어 1927년 경주에서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동되었다.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후 대한민국에 많은 비극이 일어났다.1993년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로 약 276명 사상자 발생, 1993년 항공기 추락 사고, 같은 해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1445명 사상자 발생 하는 등 잇따른 국가적 대형 참사가 계속되었다.
당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석조여래좌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놔서 이런 대참사가 계속된다는 괴담이 돌았고 이에 정부에서는 불상을 2번이나 공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대통령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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