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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창경궁 이야기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고 불렀다. 왕이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을 곳이 필요했고 상왕과 왕대비가 머물 궁궐이 필요해서 지은 곳이 창경궁이다. 그래서 아담한 규모와 자연지형에 맞춘 편안한 구조의 궁이다. 이곳에서는 또한 왕비 후궁들이 많이 살았다. 여기서 태어난 왕자 중에 왕이 된 사람이 많다. 

 

창경궁 정문 홍화문은 조화를 넓힌다는 뜻으로 영조가 이 문 앞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창경궁의 문정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장소이다. 

 

창경궁 정문 홍화문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36회] 오늘의 탐사지: 창경궁 (춘당지-경춘천-문정전) 주제: 창경궁 속 사도세자 이야기 출연자: 설민석 , 김강훈, 로운 창경궁 1762년의 비극 임오화변 때 뒤주에 갇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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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

사실 사극에 나오는 무대는 거의 대부분 창경궁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건의 현장이 통명전이다. 숙종은 두 여인을 앞세운 서인과 남인 간 환국을 단행했고 폐비가 됐다가 다시 궁으로 돌아온 인현왕후에게 희빈 장씨는 저주를 퍼부었던 곳이 통명전이다. 

 

통명전
장희빈의 저주

 

저주때문인지 인현왕후는 저주를 퍼부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했고 나중에 장희빈은 이 저주행각이 들통이나서 결국 통명전 앞에서 숙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또한 창경궁의 비극은 계속이어져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 공원인 창경원 유원지 된다. 

▼창경궁 경춘전 /창경원이 된 이유

 

창경궁 경춘전 /창경원이 된 이유

창덕궁과 창경궁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숲에 가려져 있어 주거 환경에 적합했다. 창경궁은 성종의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궁으로 여인들이 살기 좋게 만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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