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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때 지어진 수원화성은 상업을 염두해 두고 만든 도시이다. 원래 조선의 군사전략은 적이 처들어 오면 산성으로 싸우러 가고 주거 지역은 거의 버리는 작전이었다. 열심히 돈을 모야서 쌓아놔도 적이 쳐들어오면 모든 재산을 잃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조는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성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도시가 필요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도시가 정조의 수원화성이다.
남북 도로 연결
도시의 방어와 경제적 번영을 위한 정조의 원대한 꿈이 깃든 도시가 바로 수원화성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구조는 항상 북쪽이 더 중요하다. 경복궁도 북쪽에 위치해 있고 앞 쪽으로 동서로 연결되어 있는 도로가 중요한 도로(종로)이다.
그래서 언제나 동서 방향으로 도로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업이 발전하려면 무역이 돼야 하고 무역이 가능하려면 도시들 사이에 연결이 중요하고 윗쪽에 한양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내려오는 길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모든 도시마다 북쪽에 관청이 가로막고 있고 도로는 동서방향으로 나있었다. 그런데 수원화성만 남북으로 도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금난전권 폐지
영조의 청계천 준설로 인한 인구증가로 상업도시를 만드는 토대를 갖춘 정조는 당시에 금난전권을 폐지하기로 결정한다. 금난정권이란 난전을 금하고 특정 상품을 독점해 판매할 수 있는 권리인데 인구 증가로 많아진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상업 발달의 긍정적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수원화성과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유산에 지정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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