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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전주 전동성당 무엇이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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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

전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곳은 한국 전통과 서양식 건축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로,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소이다. 특히, 이 성당은 한국 가톨릭교의 순교자 역사를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전동성당의 붉은 벽돌 외관과 둥근 돔형 첨탑은 마치 유럽의 고딕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며,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만남을 상징한다.

전동성당 역사적 배경 

전동성당의 이름은 성당이 위치한 지역인 "전동(殿洞)"에서 유래되었다. 전동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남문 인근 지역으로, 과거에는 조선 태조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했던 전주 경기전과 가까운 곳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 덕분에, 전동성당은 역사와 종교적 의미가 모두 깊다.

 

전동성당은 1908년부터 1914년까지 건축되었다. 건립 당시, 한국 가톨릭교회는 천주교 박해 시절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성당을 세웠다. 특히 이곳은 조선 후기 박해 시기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순교지 중 하나였다. 1801년 신유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피의 대성동"이라고 불리던 이곳에서 처형되었으며, 1791년 신해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신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장소 근처에 세워졌다. 전동성당은 이러한 순교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신앙을 이어가기 위한 기념비적 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역사적 의의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터에 세워진 성당이자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이다. 1937년부터 1957년까지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었다. 전동성당은 조선시대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최초 순교 터에 세워진 성당으로 1891년 프랑스 보두네(한국이름 윤사물) 신부가 대지를 매입해 1914년 완공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다. 

 

 

**천주교 탄압 이유 

조선시대는 철저한 유교적 신분 사회였다. 이때 천주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했고 불합리한 신분 차별로 고통받던 이들 사이에서 천주교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에 천주교가 조선의 신분질서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조선왕조는 100 여 년간 천주교를 혹독하게 탄압한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이유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이유

천주교의 등장은 18세기 후반 실학자들 사이에서 서학(西學)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천주교를 학문적·종교적으로 연구하다가 실질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였고, 그 중심에는 이승훈,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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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특징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화강암 주춧돌과 붉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주춧돌은 헐린 전주읍성의 풍남문 성벽 돌을 사용했다. 

 

 

 

**전동성당 상징성 

성당의 외벽을 보면 붉은 벽돌과 회색 화강암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색 조합이 성당을 따뜻하면서도 웅장하게 보이게 만든다. 

 

1. 중앙 종탑 (33미터 높이)

중앙의 높은 종탑은33m  예수님의 나이, 즉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상징하고 이 높이는 또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영적 다리를 나타내며, 신앙을 통해 하늘로 나아가는 여정을 상징이다. 종탑의 웅장함은 특히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한국 천주교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2. 입구의 세 개의 아치

성당 정문에는 세 개의 큰 아치가 있는데, 이는 **성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를 상징한다. 둥근 아치는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으로 안정감, 영원함, 그리고 신의 보호를 나타낸다. 

 

 

3. 붉은 벽돌과 회색 화강암 외벽

외벽의 붉은 벽돌은 순교자들의 피를, 회색 화강암은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상징하며 두 재료가 함께 사용된 것은 희생과 견고한 신앙의 결합을 표현한 것이다. 

 

4.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형, 부활 등 성경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 창문은 단순히 빛을 들이는 역할을 넘어, 신자들에게 신앙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각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초기 천주교 신자 중 문맹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교육적 역할도 한다. 빛이 유리창을 통과하며 만드는 색채는 신의 은총이 신자들의 삶을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5. 둥근 창문과 출입구

둥근 창문과 출입구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영원과 완전함을 상징. 또한 이는 포용성과 신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며, 누구나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6. 빛과 공간 활용

내부 구조는 경외감과 숭고함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게 하여 신과 하늘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은 신의 현존을 상징하며, 신비로움과 명확함 사이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문화적 가치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고 서울의 명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과 함께 한국의 3대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다. 영화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사용되는 등 문화적 명소로 자리잡았고 있다. 로맨틱하고 우아한 분위기 덕분에 신혼부부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여서 둘러보는 동안 신랑 신부를 만날수도 있다. 

 

현재 이용 정보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6
전화번호: 063-284-32226

 

미사 시간:
주일: 오전 6시, 9시, 10시30분, 오후 5시
평일: 오전 6시 (월-토), 오전 11시 (화-금)
개방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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