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지만, 죽은 자를 향한 책임은 남았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그 이름, 오퍼레이션 글로리(Operation Glory).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을 서로의 품으로 돌려보낸 유해 교환 작전이다. 이 작전은 단순한 시신 교환을 넘어, 전쟁 중에도 인도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인류의 첫 선언이었고, 그 출발점은 부산이었다.
★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 왜 부산에 생겼을까?
1951년, 한국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시기, 유엔군 사령부는 부산 남구 대연동에 공식적인 묘지를 조성했다. 이곳이 바로 **유엔기념공원(UN Memorial Cemetery)**이며, 지금도 유엔이 직접 관리하는 세계 유일의 공식 유엔묘지다.
당시 전선에서는 매일 수많은 유엔군 병사들이 전사했고, 이들을 임시 묘지에 그대로 두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종전 이후에도 전사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장소로 이 묘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11개국, 총 2,311명이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 평정산에 만들어진 ‘적군 공동묘지’
같은 해, 이 유엔묘지에서 멀지 않은 민둥산 평정산에는 또 다른 묘지가 만들어졌다. 바로 북한군과 중공군의 시신을 위한 적군 공동묘지였다.
이곳은 지금은 평범한 마을 텃밭이 되었지만, 당시엔 하루에 두 대씩 시신을 실은 트럭이 올라오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대부분 군복조차 입지 못한 누더기 차림의 시신들이었으며, 안장된 인원은 총 7,022명. 이들 중에는 전투 중 사망한 병사뿐 아니라 포로로 끌려온 민간인도 포함돼 있었다.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곳은 오래도록 ‘무서운 곳’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적군 시신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려 했던 유엔군의 인도주의 실천 현장이었다.
★ 그 시신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전쟁이 끝난 후, 평정산과 또 다른 장소에 묻혀 있던 적군 시신들은 방치되지 않았다. 유엔군은 이들을 임시로 묻고 기록을 남긴 뒤, 국제 기준에 맞춰 전후 처리 협상을 추진했다. 이때 제안된 것이 바로 **‘유해 교환’**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 유엔과 북한은 전사자 유해를 서로 송환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4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전례 없는 규모의 유해 교환 작전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이 바로 오퍼레이션 글로리다.
★ 오퍼레이션 글로리의 규모와 절차
이 작전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진행되었으며, 총 60일 간 이어졌다. 유해는 엄격한 검식과 절차를 거쳐 이동됐고, 기록 확인, 국적 구분, 유해 식별 등의 과정을 모두 거쳤다.
- 유엔군이 북한·중공군 측에 인도한 시신: 약 14,000구
- 북한군이 유엔군에 인도한 시신: 약 4,023구
그중 상당수의 유엔군 유해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구 안장되었고, 일부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본국으로 돌아갔다. 반면 평정산에 묻혀 있던 적군 유해는 대부분 이 작전에서 본국으로 송환됐다. 지금은 평정산 묘지 자체가 사라지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 왜 적군의 시신까지 관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이다. 1949년에 개정된 제네바 협약은 전쟁 중이라도 전사자, 포로, 민간인 등 모든 인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이 협약을 실제 전쟁에 최초로 전면 적용한 사례였다. 유엔군은 적군을 적이라 부르면서도, 인간으로 존중했다. 포로는 학대하지 않았고, 시신도 무덤을 따로 만들어 관리했다. 이는 단순한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인도주의적 실천이었다.
★ 왜 전사자 예우가 중요한가?
전사자를 방치하면 병사의 사기가 무너진다. 가족은 국가를 원망하고, 병사는 싸울 이유를 잃는다. 그래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죽은 자에게 예를 다하라”**는 것이다.
오퍼레이션 글로리는 그 원칙을 국가가, 국제사회가 함께 실천한 상징이다. 전쟁 중에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전은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닌 도덕적·법적 성취였다.
💡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회가 진짜 강한 사회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전사자가 이름 없이 잠들어 있다. 오퍼레이션 글로리는 그런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첫걸음이었다. 지금도 유해 발굴은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6.25 전사자 유해발굴 과정 및 지뢰 찾기 작업
[선을 넘는 녀석들 한반도 6회 중] 오늘의 탐사지: 철원 화살머리고지 주제: 남북 유해발굴 작업 출연자: 설민석 ,문근영 유해발굴조사작업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 이후 9월에는
jangane.tistory.com
'Korean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 사물 4가지 이야기 (범종, 북, 목어, 운판) (0) | 2025.05.09 |
---|---|
상원사 범종 안동에서 오대산으로 옮겨진 이유는 무엇? (0) | 2025.05.09 |
BC BCE, AD vs CE 뜻과 기원, 차이점 (0) | 2025.04.14 |
권문세족 이야기: 뜻, 횡포, (0) | 2025.04.05 |
통일신라 주령구, 1200년 전 술자리에서 던진 주사위 (1) | 2025.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