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적 박물관은 1851년 런던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이다. 만국박람회는 전세계의 산업과 문화를 볼수 있는 장소였다. 당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장소를 방문했고 이때 대중 (mass) 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또한 물건을 팔기 위해 언어가 필요했고 이때 영어가 급부상했다. 또한 전 세계 문화, 지식을 공유하는 장소였기에 도슨트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또한 만국박람회는 유원지 역사, 서커스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상품 판매를 위한 홍보가 필수였기에 코끼리쇼, 회전목마, 대관람차(1893년 시카고이고, 1889년 파리의 에펠탑을 능가하려고 만들어진 것.)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유형의 박물관이 성형되었다.
1. 정원사가 만든 유리 궁전, 수정궁 (1851년)
우리가 아는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에서 출발한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증기기관 같은 기술 혁신으로 '세계의 공장'이 된 영국은, 자신들의 거대한 산업적 성과를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이 행사를 열었다.
이 박람회의 핵심은 단연 '수정궁(Crystal Palace)'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혁신적인 건물을 만든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은 건축가가 아니라 정원사였다.

- 수련에서 얻은 힌트: 팩스턴은 남미 아마존에서 가져온 거대한 수련(Victoria amazonica)을 키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커다란 수련 잎 위에 자신의 어린 딸을 올려놓고도 잎이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 자연의 구조를 건축으로: 그는 '어떻게 이렇게 얇은 잎이 무거운 무게를 견딜까?'를 고민하다가, 수련 잎 뒷면의 뼈대(방사형 잎맥) 구조에서 정답을 찾았다. 이 자연의 원리를 철골과 유리에 적용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립식 온실 형태의 건물을 완성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투명하고 거대한 건물을 보고 놀라워하며 '수정궁'이라고 불렀다.



2. '대중'의 탄생과 영어, 그리고 도슨트
만국박람회는 단순히 물건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의 사회와 문화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인과관계의 중심이 되었다.
- '대중(Mass)'이라는 단어의 등장: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런던의 박람회장으로 몰려들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평범한 사람들을 묶어 부르기 위해 '대중'이라는 개념과 단어가 본격적으로 탄생했다.
- 영어의 급부상: 각국의 상인과 관람객이 모여 물건을 팔고 교류하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영어가 세계적인 상업 및 공용 언어로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 도슨트(Docent)의 시작: 전 세계에서 모인 복잡한 기계와 낯선 문화를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해주어야 했기에, 전시를 해설하고 지식을 공유해 주는 '도슨트'라는 역할이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3. 유원지와 서커스로 이어진 상업적 홍보
박람회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행사였기에 상품 판매와 적극적인 홍보가 필수적이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박람회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오락거리가 필요했다.
- 주최 측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코끼리 쇼 같은 화려한 서커스를 도입했다.
- 또한, 회전목마와 대관람차의 초기 형태 같은 거대한 탈것을 설치하여 관람객을 즐겁게 했다.
- 이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전시'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오락'이 결합되면서, 만국박람회는 오늘날 놀이공원(유원지) 역사의 뼈대가 되었다. 이러한 융합과 상업적 성공을 계기로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의 현대적인 박물관들이 형성될 수 있었다.
4. 세계 무대에 선 대한제국, 파리에 세워진 근정전
이러한 세계적인 만국박람회 열풍은 한국(당시 조선 및 대한제국)에도 이어졌다.
- 국제 무대 데뷔: 한국은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처음으로 공식 초청을 받았고,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도 정식으로 참가하게 된다.
- 파리 한복판의 근정전: 특히 파리 박람회에서는 에펠탑이 있는 샹드마르스(Champ de Mars) 지역에 대한제국의 단독 전시관을 세웠다. 이때 한국관은 조선 시대 왕의 즉위식 등 국가의 가장 큰 행사를 치르던 경복궁의 중심 건물, 근정전을 모델로 지어졌다.
- 대한제국은 이 화려한 전통 건축물 안에서 각종 전통 공예품과 농산물을 전시하며, 서양 세계에 독립된 국가로서의 고유한 문화와 자부심을 당당하게 알렸다.


전시관 내부에는 전통 의복, 농기구, 목판 인쇄된 불교 경전이 전시됐고, 그중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 중 하나인 직지가 한국 밖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 것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프랑스 신문은 이 건물의 색채와 "극동의 아름다운 지붕"이 다른 어떤 전시관보다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고 썼다.
이후 한국은 손님이 아니라 주최국이 됐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그다음 2012년 여수 엑스포까지 열었다. 결국 이야기 전체는 1851년 런던에서 정원사의 수련 한 장으로 시작해서, 1900년 프랑스 건축가가 지은 한국 파빌리온을 거쳐, 백 년 뒤 한국이 직접 엑스포를 개최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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