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은 때때로 총보다 강력한 무기가 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바다 위를 장악하고 유럽의 부를 실어나르던 해상 제국이었다. 하지만 이 무역의 흐름을 가로막기 위해 영국은 ‘관세’라는 경제 무기를 꺼냈고, 그 결과 세계 최초의 무역전쟁이 시작된다. 바로 제1차 영란전쟁(The First Anglo-Dutch War) 이다.
📜 무역을 빼앗기 위한 법, 항해조례
1651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무역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항해조례(Navigation Act)**를 제정했다.
이 법의 핵심은 단순했다:
“영국과 그 식민지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는 영국 배로만 운송해야 한다.”
이는 당시 유럽의 물류를 지배하던 네덜란드 무역선의 활로를 원천 차단하는 조치였다.
📌 즉, 이 법은 **네덜란드 선박에 대해 실질적인 ‘관세 장벽’**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 네덜란드의 ‘무역 효율’에 대한 위협
당시 네덜란드는 플류트선(fluyt ship)과 같은 화물 최적화 선박을 활용해 효율적인 운송으로 유럽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 적은 선원, 넓은 화물칸, 세금 절약형 구조
- VOC(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상업 루트 확보
영국은 점점 더 밀려나고 있었고, 결국 무역 전쟁으로의 전환을 선택한다.
⚔️ 갈등은 전쟁으로, 제1차 영란전쟁(1652–1654)
1652년, 항해조례 발효 직후 영국 해군이 네덜란드 상선을 나포하면서 무력 충돌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단순한 충돌이 아닌, 국가 간 ‘관세·무역 주도권’을 놓고 벌인 최초의 해상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 영국은 **근해 제해권(control of coastal seas)**을 얻기 위해 전면전을 선언
- 네덜란드는 자유 무역 질서(free trade system) 수호를 내세우며 저항
- 양국 모두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유럽 근해에서 수차례 해전을 벌임.
결국 국가간의 무역전쟁은 함대간 전면전으로 번졌고 총 4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르게 된다. 영국은 전쟁용 군함이 많았고 네덜란드 배는 기동성은 좋았으며 화력에서는 밀렸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지리적으로 영국이 유리했다.
아래 지도에서 영국은 유럽 대륙과 북해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네덜란드가 밖으로 나가려면 Engliand 주변의 바다를 통과해야했고 이 지리적 위치를 이용함으로써 영국은 네덜란드 상인 선박과 함대에 관세를 매겨 무역 경로를 방해 할 수있었다.
결국 해상 전투의 주도권은 영국에게 넘어간다.
📌 이처럼 무역을 위한 군사 충돌은 세계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 전쟁의 종결과 조약: 누가 이겼나?
결과는 영국의 항해조례 유지, 네덜란드의 제한적 항해 허용이었다.
결국 영국은 무역로 일부를 되찾았고, 네덜란드는 세계 시장에서의 위치를 유지했지만 일정 부분 주도권을 잃게 된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해상무역 패권을 쥐고 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1780 년대 영국 네덜란드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빠르게 성장한 반면 네덜란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 전쟁의 의미: 무역이 곧 전략이 된 시대
- 최초의 관세 중심 전쟁
- 군사력보다 ‘법과 경제’가 전쟁을 일으킨 사례
- 이후 영국은 항해조례를 계속 확대하며 제2·3차 영란전쟁까지 이어간다.
- 해군력 강화와 무역보호주의(protectionism)의 시초로 평가됨
1800년 무렵 영국과 네덜란드의 수출량은 4배 넘게 벌어졌고 영국은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영란 전쟁 이후 무역시장이 확장되고 자본을 모으로 식민지를 통해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이 기반위에서 산업혁명이 촉진된다.
영국 산업혁명 배경 어떻게 시작되었나? 47 -1
인류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술의 혁신과 진보,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의 전환,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모든 것의 시작, 1차 산업혁명 방적기와 증기기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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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19 세기 중반에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함에 따라, 세계의 공장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항해조례를 폐지하고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전에는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고관세 정책을 펼쳤지만 산업혁명이후 더 넓은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관세를 인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약소국의 관세 자주권을 빼앗고 영국 상품이 더 잘 팔리는 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영국이 자유무역을 강요했던 첫번째 나라는 중국이었다. 1839년 영국이 청나라에 자유무역을 요구하며 아편전쟁이 발생한다.
아편전쟁 (Opium War) 이야기
16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노려온 최대 시장 중국의 문을 열기 위한 싸움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선봉에 서게 되었다. 모든 나라에서 무역을 하기원했던 중국이였기에 나라별로 허가된 제한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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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을 승리하며 청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후 난징조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고 영국의 커다란 식민지 인도에도 똑같이 적용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이렇게 영국은 무역에서 나온 수입으로 강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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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국의 자유무역에 위기를 느낀 나라가 있었다. 바로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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