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 배경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유일한 원자폭탄 보유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1949년 소년은 4년만에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뜰뜬 분위기는 급격히 식어버린다. 소련이 빠른시간에 핵 개발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맨해튼 프로젝트 내부에 스파이가 있었던 것이다. 독일 출신 영국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가 한 국가가 핵을 독점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핵실험의 주요 정보를 소련에 넘겼던 것이다.
이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이 핵폭탄 개발을 한지 반년도 안 지나 1950년 1월 31일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그것이 수소폭탄이었다. 수소폭탄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수십배, 수백배의 위력을 가진 핵폭탄이다.
이 수소폭탄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헝가리 출신의 망명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가 개발되었다. 그는 1952년 수소폭탄 개발을 2년만에 성공한다.
1952년 11월 1일 작전명 아이비 마이크, 세계 최초 수소폭탄 아이비 마이크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리틀보이 핵폭탄보다 약 693배 강력한 위력이었다.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
세계 최초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미국은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소련에서도 수소폭탄을 개발하게 된다. 1955년 11월 22일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시험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한다. 1953년 8월 12일 소련은 미국 아이비 마이크보다 작은 TNT 400kt 위력이었고 2년 만에 TNT 1600 kt 위력의 수소폭탄을 만들어냈던 소련이었다.
수소폭탄 차르 봄바
게다가 1961년 10월 30일 소련 노바야제믈랴 제도 세계 최대 위력의 수소폭탄 차르 봄바 실험이 성공하게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 차르 봄바의 위력은 미국의 아이비 마이크의 약 5배인 TNT 50000kt 급으로 버섯구름 높이가 에베레스트산의 7배인 약 64km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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