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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로마의 시작 , 로마 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171-1

고대 로마는 산탄렐로성, 콜로세움, 아스펜도스 원형극장 등 로마의 건축은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도 사용되는 돔, 아치, 모자이크등 로마의 건축 및 예술양식도 로마에서 왔고 로마의 국교였던 기독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있다. 또한 2천여 년 동안 다양한 정치 체제를 거친 로마의 역사는 현대 정치 체제의 기초가 되었다. 

 

SPQR 뜻 

롯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SPQR은 로마사에서 중요한 표어로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는 정치엘리트 원로원과 시민이 운영하는 공화정 체제로 발전했다. 

 

SPQR 뜻

 

로마곳곳에서 볼수 있는 SPQR은 고대로마의 선진적인 정치 체제를 상징하는 문구이다. 이렇게 유럽의 곳곳에 로마제국의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로마곳곳에서 볼수 있는 SPQR

 

로마의 시작 

로마의 시작은 이탈리아 반도 테베레강 인근 일곱 언덕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로마는 이후 수많은 전쟁과 동맹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점령하며 약 480년 만에 이탈리아반도를 통합하고 지중해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로마의 시작

 

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2대 황제 티베리우스 

3대 황제 칼리굴라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5대 황제 네로 

 

로마 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기원전 1세기경 지중해를 둘러싼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약 4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기원전 27년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한다. 그는 로마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장군으로 수년간 로마정계를 장악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다. 카이사르는 1인 독제체제를 꿈궜다가 원로원 의원들에게 암살당했다. 

 

아우구스투스 = 존엄한 자라는 뜻

 

이를 모두 지켜봤던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된후 이들이 원로원 중심의 사회에서 황제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의 변화에 반감을 가질까 걱정했고 이에 황제의 권한의 대부분을 원로원에게 돌려주고 실질적 권력인 군 통수권과 화폐 발행권 최고 종교권은 자신이 독차지했다. 

 

로마 도시 재건 

황제 즉위 후 아우구스투스는 무질서한 개발로 완성도가 떨어졌던 수도 로마 도시재건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도시가 오래된 탓에 홍수와 화재 등의 재난에 취약했다. 이에 제국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시작했고 도시 재건 사업으로 대리석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로마제국은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 도로를 정비했다. 로마의 도로는 대부분이 마름모 양의 돌로 만들어졌다.이렇게 아우구스투스 시기의 영토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까지 장악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제국 전체에 약 8만 5천 km의 도로를 건설했다. 

 

로마의 도로 아피아가도, 아퀴덕트가 로마 제국에 미친 영향은?

 

아피아가도, 아퀴덕트가 로마 제국에 미친 영향은?

유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 중에 하나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유럽의 고대문화와 서양 역사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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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로마제국을 만들기 위한 아우구스티스의 노력은 여기가 끝이 아니였다. 속주 관리를 위해 총독을 파견 중앙 정부에서 통치를 받도록 했다. 대표적인 속주로 프랑스의 갈리아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행정, 군사적 중심지로 기능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히스파니아는 풍부한 광물자원으로 제국의 국고를 충당했다. 

 

로마 속주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의 아이깁투스는 로마지역의 주요 곡창지대로 활용되었다. 속주들에게 세금을 걷을 때도 도로망을 이용해 빠르게 운송했다. 

 

속주 관리제도 

속주가 늘어날수록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속주들의 반란에 대비해 세금제도를 재정비했다. 대개는 화폐로 세금을 거둬들였지만 와인 산지에서는 와인으로 올리브 산지에서는 올리브로 소금 생산지에서는 소금으로 현물 세금 납부를 했다. 소금이 귀했던 탓에 소금길이 생겨날 정도였다. 

 

비정기적이던 인구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서 인구와 재산 규모를 파악했고 이를 통해 속주와 속주민들의 재정 상황에 맞는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통제에 벗어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제도를 마련했다. 황제가 속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항소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항소제도는 황제가 속주민들의 고충을 직접 해결해주는 동시에 속주의 총독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속주민들에게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부여했다. 속주민들이 선호한 시민권 획득방법의 하나는 군 입대였다. 군 복무기간은 25년이었다. 군인으로 복무하면 안정적으로 급여 지급이 되었고 의료 서비스도 받을수 있어서 속주민들은 군 복무를 선호했다. 이에 더해 전문 상비군을 갖추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서 외부의 적에게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이렇게 아우구스투스는 도시 건설, 속주정비, 군대 체계를 구축하며 로마제국의 평화와 질서를 수립했다. 

 

그러나 속주가 많은 관계로 모든 속주를 만족시키는 일은 어려웠고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포용하는 포용정책을 펼쳤다. 아우구스투스의 포용정책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판테온 신전이다. 

 

**로마 판테온 신전 이야기 (건축가가 뽑은 최고의 건축물)

 

로마 판테온 신전 이야기 (건축가가 뽑은 최고의 건축물)

인류 역사상 인구 100만명을 돌파한 도시가 로마였고 그 이후 600백년 동안 없었다. 그 이후 중국의 장안이 인구가 넘어서 이 두나라 사이에 무역을 했던 길이 실크로드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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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관용과 포용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막고 속주에서 지지를 받고한 했던 아우구스투스이다. 이탈리아는 모든 사람의 의견과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을 팍스 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라는 말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부터 약 200년간 로마의 평화가 이어졌다.  

 

팍스 로마나 시대의 콜로세움 역사 (티투스 황제의 나우마키아 어떻게? 

 

로마 콜로세움 역사 (티투스 황제의 나우마키아 어떻게? )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로마라고 한다. 로마의 건축은 황제의 권력과 치적을 상징하는 동시에 로마인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콜로세움이다. 로마 건축 외관은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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