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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단종복위 운동과 사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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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운동

 

권력을 위해 자신의 어린 조카 단종의 자리를 차지한 세조를 일부신하들은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세조에게는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세조를 암살하고 단종을 복위시킨 계획을 세운다.  결국 1456년 이들이 드디어 세조 암살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 시작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할 연회장이었다.  이 연회장에서 세조를 죽일 암살 계획인 이루진다. 그런데 연회날 아침 뜻밖의 인물 한명회가 연회장을 방문해 세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조를 살린 한명회의 말
세조를 살린 한명회의 말

 

연회장에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무사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 한명회는 눈치빠른 판단으로 세조를 살린 것이다. 


사육신, 단종의 죽음 

 

사육신 생육신 이야기 (뜻, 성삼문,박팽년, 묘)

창절사 강원도 영월 창절사는 10개의 위패들 (사육신 6명+엄흥도, 박심문 포함 8명)과 정조 15년 생육신인 김시습 남효온까지 10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육신과 생육신 (죽을)사(여섯)육 (신하)

jangane.tistory.com

 

 

그리고 이후 세조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주요 인물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사지를 찢어죽이는 거열형에 처한다. 이렇게 죽은 6명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거사가 발각된 이유는 거사를 계획했던 인물 중의 한명이 동료를 배신하고 세조에게 암살계획을 알린 것이다. 이렇게 사육신은 비참하게 죽게된다. 

그리고 세조는 단종복위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해 조카 단종을 없애게 한 것이다.  결국 세종은 단종을 멀고 먼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를 보낸 후 17세의 나이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명회 계유정난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다. 17회

한명회은 어떻게 조선의 왕을 바꿨나? 한명회 관직오르다. 한명회는 과거시험에 한번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 지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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