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31대 공민왕은 고려사에 중요한 왕 중에 한사람으로 종묘에 고려왕 중 유일하게 자리한 공민왕 사당이 있고 역사상 가장 큰 영토였던 몽골제국이 붕괴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고려 500년 왕조의 마지막 불꽃 같았던 왕이다.
공민왕 어떻게 왕이 되었나?
13세기 고려는 30여 년간 대몽항쟁을 이어왔고 고려의 패배 후 원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고 대대로 원의 황실과 혼인하여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였다. 공민왕 역시 원나라 노국대장공주와 혼인을 맺게 된다. 또한 공녀라는 이름으로 젊은 여성들이 원에 조공으로 바쳐졌다. 이때 공녀로 갔던 기씨가 황후가 되었고 이후 고려에 관한 일은 기황후가 했었다. 이때 고려는 일본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고 1351년부터 고려뿐만 아니라 원나라 동해안까지 침략을 했다.
공민왕의 형 충혜왕이 왕위에 오른 후 왕의 동생자격으로 원의 볼모 (숙위)로 가게 된 공민왕이였고 몽골어로 투르칵인데 10년간 숙위로써 황제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속국의 왕족이 원 황제와 숙식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때 공민왕은 기황후의 힘을 업고 고려의 왕이 된다. 이때부터 공민왕의 시대가 열린다.
공민왕 노국대장공주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몽골 황실의 적통으로 위왕의 딸이고 노국대장공주의 본명은 부다시리이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의 정략결혼 덕분에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다. 일반적으로 정략결혼한 경우에는 다 사이가 안 좋은데 이들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
공민왕 사망 후 두 개의 능을 만들어 부부가 한 자리에 묻혀진다. 기록에 의하면 두능을 과통하는 지하 통로를 만들어 부부의 혼이 만날수 있도록 했다는 얘기가 있다.
종묘에 공민왕 사당이 있는 이유
종묘 안에 있는 공민왕 사당에 공민왕이 그린 준마도가 있다. 공민왕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음악과 그림실력 또한 출중했다. 공민왕의 신당이 종묘에 있는 이유는 조선 사람들에게 공민왕이 공식적으로 고려의 마지막 국왕이고 조선은 고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내세웠기 때문에 고려의 마지막 왕의 자리를 종묘에 마련해야 고려의 정통성을 잇는 국가임을 알리려는게 아닌가를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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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간섭기 공민왕 업적과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등장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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