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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강화도 외규장각

강화도의 또 다른 역사 유적 고려궁지가 있다. 고려 궁지안에는 조선시대 외규장각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간할 목적으로 설치된 곳으로 특히 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

 

* 어람용 의궤

어람용 의궤 표지는 특별히 비단을 사용하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선을 둘러 왕실의 위험을 더하였다. 

 

외규장각 관람 순서

 

외규장각 복원을 추진하게 된 것은 1991년 서울대 규장각에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병인양요 당시 약탈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촉구하였고 외규장각 도서반환문제가 대두되면서 외규장각 복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 무엇이 다른가? (의궤의 가치)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 무엇이 다른가? (의궤의 가치)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의궤는 대부분 규장각 서고에 보관되어 있고 모두 3500여 권이다. 2011년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 중에 장례에 관한 의궤만 145권이고 결혼식에 대한 혼례에 대한 의궤가 17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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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안에는 조선 21대 임금 영조가 66세 때 계비로 맞았던 정순왕후의 가례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정순왕후의 가마는 사방이 막혀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 의 재현 장면

 

 

외규장각 안에는 의궤의 기록대로 왕실의 행사 행렬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또한 145년 만에 반환된 의궤의 복제본도 전시되어 있다. 

 

귀환된 의궤

 

강화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 중 정상들의 합의로 145년만에 반환된 것이다. 그러나 의궤가 반환되기 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폐문서 보관실 별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더 화가났던 것은 이 문서가 중국 도서로 분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75년 우리나라 역사 학자 박병선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  현재 실제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정책으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죽게 되자 이후 프랑스가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범했다. 이때 왕실의 주요행사를 기록한 의궤포함 도서 359점을 약탈해갔다. 20년간의 노력 끝에 임대 계약 형식으로 도서의 일부를 반환하게 되었다. 

 

 

**병인양요 외규장각 이야기

 

병인양요 외규장각 이야기

외규장각이란? 정조때 세워진 외규장각은 왕실의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보물창고로 쓰였고 의궤들도 모두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다 1866년 병인양요때 강화도를 침입해온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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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45년 만에 우리나라로 귀환했으나 여전히 소유권은 프랑스에 있는 상황이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이 의궤를 한국에 돌려주겠다고 결정했으나 프랑스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의궤란?

 

의궤란 ? (차이나는 클라스 225회)

의궤란? 의식+궤범(바퀴 궤, 모범 범) 조선 시대의 왕실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으로 이렇게 그림으로 남겨놓은 기록을 보고 그대로 다음 행사에 적용했다. 의궤를 메뉴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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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에는 자국 문화재가 많지가 않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에는 무엇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에는 무엇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박물관 외관에도 피라미드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집트관은 2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부터 이집트 그 자체인 대스핑크스상이 전시관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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