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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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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의 역사와 전략적 가치

2021년, 전 세계가 단 한 척의 배 때문에 마비되었다.이름은 에버기븐(Ever Given), 장소는 바로 수에즈 운하(Suez Canal).불과 며칠간의 마비였지만 세계 물류 시스템은 혼란에 빠졌고,그제야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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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예전부터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며 끊임없는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석유'입니다. 중동은 압도적인 석유 매장량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석유를 캐내는 생산 단가가 매우 저렴합니다. 이 때문에 중동은 자연스럽게 전 세계 에너지 패권을 다투는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고, 에너지가 이동하는 물류의 핵심 길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석유의 무기화와 1차 오일쇼크

1960년대 이후,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들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이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하나로 뭉쳐 석유의 생산량과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석유가 단순한 자원을 넘어 세계를 쥐고 흔드는 '무기'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3년 중동에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자, OPEC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돕는 나라들에게는 석유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1차 오일쇼크(석유 파동)'입니다. 단 몇 달 만에 국제 유가가 4배나 폭등하며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국을 덮친 국가적 위기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한국은 이 거대한 세계적 위기를 어떻게 버텨냈을까요?"

사실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산업이 한창 뻗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수입산 석유에 100%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석유 가격이 폭등하자 물가도 미친 듯이 올랐습니다. 1975년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무려 25%에 달했는데, 이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대통령의 '긴급 조치'가 발동되었습니다. 밤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은 모두 꺼졌고, 텔레비전 방송 시간도 단축되었으며, 대중목욕탕의 영업까지 제한하는 등 눈물겨운 에너지 절약 정책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아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해 줄 확실한 파트너가 절실했습니다.

뜻밖의 구원자, 이란 그리고 테헤란로

많은 아랍 국가들이 석유 수출을 막고 있을 때, 뜻밖에도 '이란'이 한국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외교적 입장이 달랐고, 한국에 가장 필요한 원유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든든한 생명줄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은 이란의 결정적인 도움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 우정을 영원히 기념하고 앞으로도 안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1977년 서울특별시장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이 만나 '자매결연'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는 의미로 각국 수도에 서로의 도시 이름을 딴 길을 만들기로 약속합니다.

 

당시 한창 개발 중이던 서울 강남의 허허벌판 흙길(원래 이름은 삼릉로)은 **'테헤란로'**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거리는 수많은 고층 빌딩과 IT 기업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가장 화려하게 성장했죠. 반대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 북쪽의 고급 주택가에도 **'서울로(Seoul Street)'**가 생겼습니다. 1979년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국가 체제가 완전히 뒤바뀌고 외부 세계와의 외교 단절도 있었지만, 테헤란의 '서울로'는 그 이름 그대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남아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중동 건설 붐

이 뼈아픈 오일쇼크는 한국에게 에너지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준 큰 교훈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란과의 성공적인 교류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중동으로 진출하는 튼튼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비싼 값에 석유를 팔아 막대한 돈(오일머니)을 벌어들인 중동 국가들이 대대적인 국가 인프라 건설에 나서자,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수많은 한국의 건설 노동자들이 뜨거운 사막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중동 건설 붐'입니다.

이때 한국 사람들이 모래바람 속에서 흘린 땀방울로 벌어들인 엄청난 달러는 비싼 석유를 수입하는 데 쓰였고, 나아가 한국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는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에너지를 구하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엄청난 기회로 이어지며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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