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서귀포 지명 유래 : 서복 사기 사건.. 서귀포 지명 유래 서귀포라는 지명의 유래 정방폭포와 관련이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은 불로불사를 염원했다. 그때 서복이라는 자가 자신이 불로초를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서복은 3000명의 어린 남녀 동남동녀를 얻어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제주도의 정방폭포였다. 불로초를 찾으러 가다가 정방폭포에 들렀던 서복 일행은 '서복이 왔다 간다' 라는 글귀 서불과지 를 정방폭포 근처에 새기고 간다. 그래서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자리라는 뜻에서 서귀포라는 지명이 유래된 설이 있다. 그렇다면 서불과지라는 글씨가 정말 정방폭포에 새겨져 있는가? ▼ (벌거벗은 세계사)서복 사기 사건 : 서불과차 내용 확인해보기 진시황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로.. 불로불사 꿈꾸다. 기원전 221년 마침.. 더보기 추사 김정희 세한도 읽기 : 추사체란 ?/ 제주 추사관 건축 의미. 추사 김정희는 누구? 추사 김정희는 돌, 청동기 비단 따위에 남겨진 기록들을 연구하는 금석학의 대가였다. 다른 사람이 비석인 줄 알았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평양에 있는 고구려 비석도 많이 정체를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문인이자 서예를 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왕의 심기를 불쾌하게 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의 옥사사건의 초안 상소를 김정희가 작성했다고 관련자들이 말을 해서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와서 위리안치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갈수 없는 최고등급유배) 된다. 그러나 제주도에 유배하던 기간에 많은 글을 쓰고 추사체를 제주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추사체는 어떤 서체인가? 추사 선생의 글씨가 추사체이다. 특정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사 선생의 글씨가 만년까지 여.. 더보기 도끼만행사건 요약 정리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도끼 만행 사건은 8월 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노무자들의 작업을 경비하던 유엔군 경비병들을 북한 군인 약 30여명이 계획적으로 기습해 와서 도끼와 곡괭이를 마구 휘둘러 미군 장교 두 명을 살해하고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측 경비병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유엔 관측 차량 3 대가 부서졌다. 이 사건으로 유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3초소 앞에는 큰 미류나무가 있어서 유엔군 5초소가 커퍼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시야 확보가 필요했고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결정한다. 당시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남북 왕래가 자유로웠던 JSA지역이었고 사소한 다툼이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이날 북한군이 가지치기를 하지말라며 시비.. 더보기 독도 일본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이유 , 근거 북한의 역사왜곡은 가히 어매이징할 정도이다. 그런 북한도 한 가지는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2023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11종에 독도는 자신의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장 1일본은 17세기 중반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것일본이 거듭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옛날 독도가 주인없는 땅일때 일본의 어부들이 70년 동안 어업활동을 했고 일본인 시마네현 고시를 먼저했다는 것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때부터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을 했다. 17세기 말 울릉도 독도에서 어업을 하던 부산 출신 어민 안용복은 돗토리번에 가서 일본 영주에게 독도는 조선 땅임을 주장하고 당시 에도 막부 역시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인정한 사건이 있다. 안용복.. 더보기 이중섭 화가 작품읽기, 해석: 아이 그림이 많은 이유, 러브스토리 MoMa 에 전시된 이중섭 그림 3개는? 이중섭은 국내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매료시킨 화가로 20세기 한국 화가 중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작품 3점이 전시되어 있는 화가이다. 미국 공보원장 아더 맥타가트가 이중섭 화가의 팬으로 개인 경매에서 구입후 뉴욕 현대 미술관에 기증을 하면서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 등록되게 된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1488점 중 104점이 이중섭 작품일 만큼 이건희 회장도 자랑했던 화가이다. 이중섭 화가가 제주도도 온 이유 1952년 6.25 전쟁 중 제주도로 피난 온 이중섭은 1년여정도의 제주도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일 것이라 추측한다. 제주도 자구리 공원에는 이중섭 화가와 아내가 함께 매일 산책했던 산책로를 만들어 놨다. .. 더보기 이중섭 흰소 , 황소 그림을 많이 그린 이유 이중섭 소를 많이 그린 이유 이중섭 화가는 오산 고등보틍학교를 들어가 임용련 미술 선생님을 만났고 이것이 그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가장 조선인 다운모습으로 조선인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중섭이 선택한 그림이 바로 소였다. 이중섭 화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조선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소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소의 이미지가 긍지를 잃지 않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운 조선인의 의지를 담아낸 것이 소 그림이다. 1940년대 이중섭 작품 1940년 대 이중섭 작품은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불타버렸다. 사람들은 이중섭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작품에 잘 담아서 그린 화가 중 한명이라고 말한다. 1953년에 그린 황소와 1956년 .. 더보기 제주 4.3 사건 : 아무도 말할 수 없었던 이유.. (순이 삼촌 )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민간인 1만 4천여 명을 희생시킨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또는 일제에서 막 해방된 미군정 상태의 한국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 정부를 꿈꿨던 남조선 노동당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램과 달리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가 예고된다. 제주도 안 남로당 조직은 5.10 단독선거를 저지하고자 했고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제주도의 남로당 350여 명은 제주 경찰서 지서들을 무장공격한다. 그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 학살과 탄압이 시작된다. 정부토벌군 강력한 반격, 이른바 초토화 작전을 쓴다. 무장 봉기대와 경찰 경비대 , 토.. 더보기 반지하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반지하 용도 이럴수가 !! [알쓸별잡 7회 중]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이유는 6.25 전쟁 이후에 나중에 전쟁이 혹시 또 일어나면 시가전을 위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일 때를 대비해서 참호처럼 반지하에 들어가서 창문에 총을 놓고 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법적으로 반드시 반지하를 지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1960~70년대에도 남북간의 긴장은 이어지고 있었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전쟁에 대비해 주택마다 지하실을 만들 것을 법제화했다. 방공호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실을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나 80년대 주택 부족 사태가 극심해지면서 반지하 임대요건이 완화되었다. 그래서 전쟁을 대비해서 지은 반지하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반지하를 금지하는 추세다.. 더보기 창신동 절벽마을 역사,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있는 이유 ~ 창신동 절벽마을이란? 창신동에 가면 40m 정도의 가파른 수직 절별이 있다. 창신동은 사대문안 동대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성곽길의 서쪽은 혜화동이고 오른쪽은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원래 옛날에는 채석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때 서울에 많은 석재 건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산들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된 돌산이여서 그곳에서 돌을 떼서 가져와 건물을 만들었다. 서울 곳곳은 석재를 채취하기 위해 깍여나갔다. 해방 이후 깍여나간 산 주위로 주거지가 생기고 역사를 담은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과거 사대문 바깥쪽에 위치해 있던 창신동은 빈땅이었다. 그래서 채석장으로 사용했었다. 멀리 보이는 절벽은 채석장이었다. 이곳에서 캔 돌로 덕수궁 석조전, 조선총독부, 서울시청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창신동 마을은 산 능선.. 더보기 김삿갓은 누구? 유명한 시 , 삿갓을 쓴 이유 , 무덤은 어디? 73 조선의 27대 왕 순조가 다스리던 시기에 방방곡곡을 떠돌며 살았던 김삿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삿갓의 신분은 기반 세력과 살림이 아주 보잘것 없는 양반인 잔반이었다. 잔반은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몰락한 양반을 뜻한다. 김삿갓은 누구? 김삿갓은 집안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높은 위세를 자랑했던 장동 김씨 집안이었다. 안동 김씨의 분파로 장동 김씨 가문이었고 경복궁 북쪽 근처에 위치한 지금의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을 일컫는 지역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었다. 아버지는 김안근으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동 김씨들은 안동 김씨에서 분파되었지만 순조의 외척이였기 때문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다. 그들은 왕실의 외척으로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세도정치를 펼쳤던 세력.. 더보기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4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