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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조선 최초 전차 개통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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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전차, 왜 개통되었을까?

1899년 5월, 조선에서 최초로 전차가 개통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으며, 당시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대한제국의 중요한 근대화 사업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전차가 개통된 이유가 단순한 교통 편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차 도입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종 황제의 잦은 능행(왕릉 참배)이었다.

 

 

 

능행 비용 절감을 위한 전차 도입

고종은 왕릉을 자주 찾았는데, 특히 청량리 홍릉(명성황후의 능) 방문이 많았다. 문제는 능행 때마다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차 도입이 건의되었고, 결국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잇는 노선이 개통되었다. 하지만 정작 고종은 전차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전차의 모습이 조선의 전통 장례식에서 쓰이는 '상여'와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상여같은 전차

 

 

조선 최초의 전차 노선과 대중의 반응

전차는 개통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하루 평균 2천 명이 이용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고, 새로운 교통수단을 구경하려는 인파도 넘쳐났다. 하지만 전차 운행 초기, 한 아이가 전차를 구경하다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조선 최초의 교통사고로 기록되었으며, 격분한 시민들은 전차를 불태우는 사건을 일으켰다.  

 

 

전차 도입 후 변화와 법적 대응

전차 화재 사건 이후 고종은 관련 법을 제정하고 전차 운영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전차는 다시 운행되었고, 점차 조선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차 운영은 결국 1968년을 끝으로 중단되었고, 그 자리는 버스와 지하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1899년 최초의 전차개통

 

조선에서 전차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고종의 능행 비용 절감이었지만, 이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전차 개통은 조선이 근대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서구식 교통 시스템을 도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운영 초기에는 사고와 갈등도 있었지만, 전차는 이후 서울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교통사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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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승차 인원이 2천여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전차에 구경하던 아이가 치이면서 최초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사고이후 사람들이 전차를 불태웠고 이에 고종은 법을 만들어 발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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