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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국회의사당 투어 : 대한민국 탄생 배경과 1차, 2차 개헌까지 국회의사당은 개방된 장소로 국회 1975년에 건립되었고 건립 100주년 2075년에 개봉할 목적으로 포도주를 묻어놨다고 한다. 국회에는 국회의원 300명이 있다.    국회의 역할 가장 큰 역할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헌법개정 권한이 있다. 또한 예산안 심의와 결산을 하는데 1년에 660조 원 예산을 사용하는데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약 2조원씩 심사하며 국민들의 살림을 검토한다.    국회의 시초 임시의정원 일제의 지배에 항거한 3.1 운동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한달 후 상해에 독립운동 대표자 29인이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만든다. 이것이 국회의 시초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국호 대한민국을 정하고 헌법을 만들며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29명의 임시의정원 의원이 1919.. 더보기
3선 개헌 통과 배경~ 김영삼, 김대중을 통해 본 한국 현대 정치사 흐름읽기 1967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3선 개헌에 대한 불씨가 일기 시작했다. 김종필은 자신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날벼락 같은 3선 개헌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박정희은 2인자의 배신에 화가 났고 JP 지지자들은 공화당에서 이미 제거 대상이었다. 박정희는 김종필을 회유했고 자신의 지지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김종필은 박정희의 국무총리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그러나 허울뿐인 권력에 불과했고 김종필은 이렇게 만연 2인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JP의 합류로 3선 개헌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김영삼 초산 테러 이에 김대중은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했고 김영삼 또한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했다. 이런 중 김영삼 자택 앞에서 초산 테러가 발생한다. 여당은 결국 야당을 따돌리고 투표장.. 더보기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어떻게 정치에 등장했나? 한국의 현대사는 1950년~2000년대 3김 시대로 한국 정치사의 중심에는 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있었다. 김영삼 : 민주당의 뿌리 김영삼은 만 25세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등장한다. 이후 무려 9선에 성공한다. 1952년 1차 개헌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택산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다. 젊고 잘생겼는데 금수저이기까지했다. 김영삼은 이승만이 속해 있는 자유당 국회의원이었는데 이승만이 장기 집권 계획을 위해 개헌을 또 하겠다고 하니 직접 개헌 반대를 외치게 된다. 그러나 결국 2차 개헌이 의결되자 탈당을 결심한다. 그때가 당시 개헌에 반대한 범야당 연합 '호헌동지회' 가 생기고 김영삼은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민주당의 뿌리가 된다. 김종필 제일 논란인 문제는... 5.16 군사정변부터 제.. 더보기
순조 (정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아버지) : 세도 정치의 시작 세조 정치의 기원은 정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위태로운 세자시절을 보낸 정조는 후견그룹의 지원을 뼈져리게 느끼며 왕이 되었고 정조는 죽기 보름전 김조순을 불러 순조의 뒤를 봐줄것을 부탁한다.  정조 사망당시 1800년 순조의 나이는 11세였다. 정조의 반대파였던 정순왕후는 어린 순조대신 수렴청정을 하며 순조의 반대파들을 제거했다. 정조의 유시를 받은 김조순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순조 1년 1801년 수렴청정했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려 노론의 정적인 남인(정조지지세력) 등 5백여명을 숙청한 신유박해가 일어난다. 정순왕후가 물러난 이후에는 순조의 장인 김조순 중심에 안동 김씨가 국정을 장악하게 된다. 국왕의 인사권도 유명무실해졌다.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외척들은 삼망에 모두 자신의 세력을.. 더보기
효명세자 개혁정치 : 실제모습은?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이다. 순조는 정조의 아들이다. 효명세자는 1809~1830년까지 21년을 살고 요절한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 정조의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할아버지를 존경했고 정조의 개혁정치를 이어가려고 했다. 정조가 일찍 사망하면서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다. 이때는 세도정권이 만들어지던 혼란한 시기였고 정조가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 순조의 외척 세력 안동김씨 김조순에게 아들 순조를 부탁한다. 적장자 효명세자 어린 순조를 대신해 정치를 한다는 명분으로 김조순은 자신의 딸을 순조와 결혼시켰고 외척으로서 안동 김씨 세력을 확장했다. 그렇게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순조의 집권내내 권력을 휘둘렸던 안동 김씨 세력에 힘을 쓰지 못했던 순조였다. 그런 순조의 아들로 태어난 이가 효명.. 더보기
공민왕 개혁정치 그리고 죽음까지 공민왕은 왕이 되자 즉위교서를 발표한다. 교서에는 일국갱시 : 한나라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즉위교서 발표와 함께 개혁을 시작한다. 공민왕은 몽골의 풍습이던 변발을 풀어헤치고 호복도 벗으며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전 분야를 아울러 개혁을 펼쳤다.    조일신의 난 그러나 공민왕의 개혁에 기황후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이걸 보던 공민왕의 최측근 조일신이 기황후의 일족 중 기황후의 오빠인 기원을 제거했다. 공민왕의 개혁을 위해 조일신이 벌인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공민왕은 이로인해 기황후에게 위협을 느끼고 조일신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발표를 했고 조일신을 죽인다. 그렇게 기황후에게 충성을 보이며 한보 물어났다.  1351년 5월 18일 개혁 3가지당시 기황후와 더불어 기철, .. 더보기
공민왕 신당이 종묘에 있는 이유? 고려 31대 공민왕은 고려사에 중요한 왕 중에 한사람으로 종묘에 고려왕 중 유일하게 자리한 공민왕 사당이 있고 역사상 가장 큰 영토였던 몽골제국이 붕괴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고려 500년 왕조의 마지막 불꽃 같았던 왕이다.  공민왕 어떻게 왕이 되었나? 13세기 고려는 30여 년간 대몽항쟁을 이어왔고 고려의 패배 후 원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고 대대로 원의 황실과 혼인하여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였다. 공민왕 역시 원나라 노국대장공주와 혼인을 맺게 된다. 또한 공녀라는 이름으로 젊은 여성들이 원에 조공으로 바쳐졌다. 이때 공녀로 갔던 기씨가 황후가 되었고 이후 고려에 관한 일은 기황후가 했었다. 이때 고려는 일본 왜구의 침략이 극심했고 1351년부터 고려뿐만 아니라 원나라 동해안까지 침략을 했다.   .. 더보기
최초 멕시코 이민 역사 한국인 최초 이민 :하와이이민 하와이 이민 1세대 사진 신부 독립운동 역사이슈 픽 118회 하와이 이민 배경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된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 청.일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jangane.tistory.com 한국인의 최초 이민은 하와이와 멕시코였다. 초기 이민 역사는 너무 힘들었다. 1905년 한국은 멕시코로도 노동 이민을 간 한인들이 많았다.  이런 일본인 인력 상인의 말에 속아 노예처럼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에네켄 :용설란(선인장과의 식물) 줄기에서 섬유를 뽑아낼수 있다. 농장으로 가게 되었다.  에네켄을 애니깽이라고 불렀다.   에네켄 농장으로 간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힘들었다.  에.. 더보기
강화도 지리적 특징 : 수도천도 배경 강화도의 지리적 특징강화도는 서울의 서쪽에 위치하고 한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4번째로 큰 섬이다.  또한 강화도는 곡창지역으로 강화, 교동지역의 쌀이 유명하다. 예부터 강화도를 금성탕지라 불렸다.  쇠금 처럼 단단한 성 : 금성, 탕지=끓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연못이 주변에 해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끓는 못에 들러싸인 무쇠성 ' 처럼 견고한 곳이라는 뜻으로 방어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4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경작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 있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유빙) 접근이 어렵다.  갯벌 또한 자연 방어선이 되어준다. 5바다에 있어 강한 조류까지.. 최적의 요새로 임진왜란 때도 왜군을 막아냈고 정묘호란때도 인조의 피신처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병자호란때 강화.. 더보기
정묘호란 : 조선인이 후금에 요청했다. !! 홍타이지는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왕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왕이 되었지만 형제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결국 형제들과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해야만 했다. 당시 홍타이지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고 업적을 쌓은 후 형제들의 힘을 빼앗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숙원인 명나라 정벌을 하고 싶었지만 만리정성의 산해관에 가로막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홍타이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조선이었다. 명나라의 장수 모문룡이 조선 가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수군이 없는 후금에게는 불안한 존재였다. 만약 명과의 전투 상황에 후방에서 공격하면 포위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도에 있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 군대를 토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