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칠면조(Turkey)는 어떻게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이 되었나? 영국 유럽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칠면조가 크리스마스 대표음식이 된 것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과거 오스만 튀르크를 통해 칠면조와 비슷하게 생긴 새가 유럽에 소개됐다고 추측된다. 이것이 다시 영국 상인들을 통해 영국으로 건너왔는데 상인들이 터키에서 온 음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했다. 그런데 17세기 대항해시대 때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뿔닭과 비슷한 진짜 칠면조를 보고 똑같이 터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썰이 있다. 당시 야생 칠면조 (Turkey)가 많았고 이것을 잡아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다. 칠면조 평균 무게만 7~11kg 이다. 닭고기의 7배 정도 크기로 엄청난 크기이다. 매년 미국은 크리스마스에만 칠면조가 2천만 마리가 소비된다. 추수감.. 더보기 헤즈볼라 등장 :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5차 중동전쟁으로 갈것인가? 🔥 제1차 레바논 전쟁, 헤즈볼라 탄생의 계기가 된 중동의 비극1982년 6월, 중동은 다시 전쟁의 불길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1차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축출하기 위해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이 전쟁은 레바논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사건 중 하나였으며, 결과적으로 헤즈볼라(Hezbollah)라는 새로운 무장세력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전쟁의 배경과 갈등의 근본적 원인1970년대 말부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레바논 남부를 근거지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게릴라전과 테러 공격을 빈번하게 벌였다. 이러한 공격은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민간인 사상자 증가와 안보 불안정성을 초래했다. 이스라엘은 PLO가 레바논 남부에서 더 이상.. 더보기 공산 전투 이야기 : 대구에 남아있는 왕건의 흔적들.. 경애왕의 최후 후백제 견훤의 목표는 삼한통일이었다. 그리고 마침 927년 신라 서라벌을 점령한다. 견훤 군의 공격에 궁궐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애왕은 견훤 앞에 끌려와 무릎을 꿇었다. 견훤은 경애왕을 모욕하고 경멸했고 결국 경애왕을 자신의 앞에서 자결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신라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를 안겨 준 것이다. 견훤의 이와 같은 행동은 이렇게 해석된다. 견훤은 신라의 장수 출신이다. 그래서 대의명분과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라왕을 죽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과시하기 위함도 포함된다. 공산전투 한편 견훤의 서라벌 점령 소식에 고려 왕건은 신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신라고 진격한다. 왕건은 마음이 급해졌고 정예 기병 5000을 이끌고 신라로 향했다. 왕건은 쉬지 않고 .. 더보기 포석정 : 경애왕은 적이 쳐들어오는 때 정말 유상곡수연을 즐기고 있었나? 포석정의 그날 포석정에 대한 이야기로 후삼국 시대 신라 경애왕은 적이 들어오는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신라가 망한 결정적 장면으로 많이 회자가 되고 있다. 후삼국시대 중심은 서라벌 경주였다. 후백제 견원은 신라의 중심부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11월에 견원은 신라의 왕경에 침입하였다. 신라 경애왕은 견훤이 쳐들어왔을때 부인과 궁녀를 데리고 포석정에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포석정에서 유상곡수연을 즐기고 있었다. 술잔이 물 위에 띄워서 수로를 따라 떠내려 오던 술잔이 멈추면 술을 먹는데 술잔이 올때 까지 시를 지어야 하고 만약 도달할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3잔을 마셔야 했다. 그렇다면 경애왕은 정말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겼을까? 포석정은 무엇.. 더보기 1910~ 40년 의병 활동 간략 정리 ▶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창덕궁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고 순종이 이를 받아 들여 이완용이 위임장을 받아들고 남산 통감관저에서 강제 병합에 도장을 찍는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부터 의병이 전국적으로 발발하였고 1907년 정미 7조약 = 한일신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된다. 이를 받아들일수 없었던 이들이 의병이 되어 정미의병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일본은 잔혹하게 진압을 한다. ▶1909년 국내 의병 세력 완전 진압을 위해 남한대토벌작전을 실시한다. 그로 인해 국내 근거지를 상실하게 된 의병세력은 간도, 연해주로 이동한다. 이후 국외에서도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한 .. 더보기 독립문 건립 배경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독립문 건립 배경 1896년 세워진 독립문은 19세기 조공, 책봉 관계였던 조선과 청나라 시대인데 1636년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항복하고 우리나라가 신하의 나라가 된다. 1882년 임오군란등을 거치면서 내정 간섭을 강화했던 청나라였으나 청일전쟁을 청나라가 패하자 1895년 청의 내정간섭에서 조선이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의 독립을 축하하는 기념문을 세우려고 했고 이왕이면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옆자리에 독립문을 만들었던 것이다. 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독립 국가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독립협회 주도로 독립문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독립문의 독립의 의미는 일본이 아닌 청나라를 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 안에서 .. 더보기 딜쿠샤: 앨버트 테일러 3.1 운동 전세계 알리다. 딜쿠샤 앨버트 테일러 딜쿠샤에 산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 사업가 겸 뉴스 통신사의 통신원이었다. 그는 3.1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 아마 앨버트 테일러가 아니었다면 전 세계에서 주목도 안 했을지 모른다. 앨버트 테일러는 이 은행나무를 보고 집터를 이곳에 잡았다고 한다. 이곳은 권율 장군의 집터이기도 하다. 이 은행나무를 권율 장군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3.1 운동 기사는 전달 배경 고종의 국장 행렬을 사진에 담아 전세계에 타전하게 된다. 그가 찍은 사진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이를 취재하고 사진으로 남겨 숨겨져 있던 조선의 상황을 세상에 알린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앨버트 테일러가 아주 우연한 계기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게 된다. 1919년 2월 28일.. 더보기 보구녀관 : 로제타 홀이 세운 최초의.. 보구녀관 보구녀관은 최초의 여성 전문 의료 교육기관이다. 초기의 보구녀관은 정동에 위치했었으나 이화의료원이 생길때 133년 만에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1886년에 세워진 이화학당의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여사님이 이화학당을 만들고 조선의 의료기관을 다녀보니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남자 의사에게 여자가 진료를 받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고 여성만을 위한 의료기관을 1887년에 설립했다. 로제다 홀은 누구? 1890년 처음 조선으로 온 로제타 홀의 당시 나이는 25세였다. 이후 43년 동안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펼쳤다. 평양에서 활동에서 평양의 오마니라 불렸다. 평소 한복을 즐겨 입을 정도로 조선을 사랑했다. 로제타 홀은 1865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 공부했고 그녀에게 영향.. 더보기 이전 1 ··· 62 63 64 65 66 67 68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