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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전쟁으로 힙합 부흥기를 맞게 된 90년대 중반. 전 세계를 깜짝놀라게 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90년대 살아있는 힙합 레전드로 불린 투팍이 총격사건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투팍 사망의 원인은 디스전 때문이었다.
투팍 사망 사건 배경
그런데 왜 디스전이 세계적인 래퍼의 목숨까지도 앗아갔을까?
90년대 동.서부 힙합신의 긴장을 고조시킨 한 사건이 있었다. 1991년 뉴욕 출신 래퍼 ‘팀 독’ 이 서부 힙합 디스곡을 발표한다. 이후 동부힙합, 서부힙합 진영의 래퍼들이 투팍과 비아이지를 양측 대표의 라이벌 구도로 몰아간다. 그러다 1994년 11월 30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에서 괴한들이 쏜 총에 귀중품을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진다.
디스전
투팍은 여러 발의 총상을 입었다. 다행히 투팍은 몸숨을 건졌으나 강도들이 반지와 팔지는 빼갔는데 고가의 시계는 갈취하지 않은 점을 수상히 여겨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니고 살해의 목적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동.서부 간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1995년 비아이지는 투팍의 총격사건에 대한 신곡을 발표한다. 이에 대한 디스곡을 투팍도 발표한다.
투팍, 비아이지 사망
투팍과 비아이지의 신경전이 극에 달한 1996년 9월 7일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투팍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복싱 경기 관람 후 클럽으로 이동 중이었고 괴한으로 부터 습격을 당해 괴한이 쏜 총 4발에 맞아 숨지고 만다. 투팍이 죽고나서 범인은 비아이지라는 소문이 돌기는 했으나 투팍 사망 6개월 후 1997년 3월 9일에 비아이지도 한 시상식에 참석한 후 숙소로 복귀하던 중 그 역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비아이지를 위한 추모곡 by 퍼프 대디
비슷한 살해 방식에 의해 살해된 비아이지였기에 투팍 사망의 복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이후에 비아이지 소속사 대표 퍼프 대디는 비아이지의 추모곡을 발표했는데 그 노래가 I’ll be missing you 로 1997년 빌보드 차트 11주 연속 1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 곡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았다. 힙합에서 샘플링이란것은 기존 곡의 일부분을 추출해 새롭게 가공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퍼프대디는 원작자 스팅의 사전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무단 샘플링을 해서 문제가 되었고 저작권을 스팅의 소유로 협의를 마친 후 앨범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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