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딸바보 아버지가 있었다?”
왕이라는 무게보다 딸을 먼저 생각했던 조선 제17대 왕 효종(孝宗, Hyojong).
그의 셋째 딸 **숙명공주(淑明公主, Princess Sukmyeong)**와 나눈 애틋한 편지 한 장에는, 권력을 뛰어넘는 가족애가 담겨 있었다.
💖 효종과 숙명공주 — 왕이자 아버지의 사랑
조선 제17대 왕 **효종(孝宗, Hyojong)**은 인선왕후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셋째 딸인 **숙명공주(淑明公主, Princess Sukmyeong)**에게 유난히 깊은 애정을 쏟았다.
딸을 특별히 아꼈던 효종은 숙명공주가 혼인할 때, 평범한 왕족의 혼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궁궐 못지않은 크기의 대궐 같은 신혼집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이는 단순한 혼사 준비를 넘어, 아버지로서 딸이 결혼한 후에도 안전하고 품격 있게 살기를 바랐던 마음이 담긴 결정이었다.
🐾 조선 최초의 ‘고양이 집사’ 공주 — 숙명공주
숙명공주는 조선 왕실에서 고양이를 키운 최초의 공주로 알려져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으나, 효종은 이를 허락하고 장려했다.
이로 인해 숙명공주는 **조선 최초의 ‘고양이 집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이는 아버지의 배려와 사랑 속에서 가능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취미까지도 이해하고 존중해 준 효종의 모습은,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딸 바보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아버지와 딸의 따뜻한 편지
조선시대에는 전화도, 메신저도 없어 부녀 간 연락은 오직 편지로만 가능했다.
숙명공주가 혼인한 1652년 이후, 효종은 딸과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효종이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의 걱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너는 어찌하여 이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네 언니와 숙희까지 패물을 가져갔는데 너는 왜 안 챙겼느냐.
아무리 악을 써서라도 부디 다 찾아라.”
이 편지 속에는 딸이 너무 욕심이 없어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아버지의 노심초사가 묻어난다. 당시 왕실에서는 패물이나 재산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주변에서 얕잡아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효종은 딸에게 그 점을 걱정스레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 숙명공주를 향한 깊은 걱정 — 아이를 잃은 슬픔
어느 날 효종은 또 다른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에는 가슴 아픈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될 줄 어찌 알겠느냐.
정은 끝이 없지만 비통한 마음을 먹지 말고 밥이나 힘써 먹어라.”
편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숙명공주는 결혼 후 자식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 시대에는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기록에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효종은 딸이 아이를 잃고 상심할까 염려하여 밥이라도 잘 먹으라고 다정히 위로했다. 왕이라는 지위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절절히 드러난 대목이다.
🧵 짧지만 애틋한 딸의 답장
숙명공주도 종종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안녕하신지 알고자 바라오며,
뵙지 못한 채 날이 거듭 지나니 더욱 섭섭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비록 내용은 짧지만, 아버지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숙명공주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 마지막까지 이어진 아버지의 사랑
효종은 단순히 말로만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딸에게 편지와 함께 선물도 보내고,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직접 챙겨 보냈다.
“편지를 보고 잘 있으니 기쁘다.
어제 두 색촉(색실)을 보냈는데 받았느냐. 또 보내겠다.”
이런 세심한 배려 속에서, 효종은 딸의 삶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했다.
이는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흔치 않은 부녀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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